왕건은 자손들에게 훈요10조라는 계율을 남겼다. 그 중 차령산맥 이남과 공주강 밖의 사람들을 쓰지 말라고 했다. 왜 그는이런 유지를 남겼을까?
우리에게는 소위 지역감정이라는 것이 있다. 특히 전라도를 대상으로 심하게는 전라민국이라 칭하면서 마치 전라도를 뭐랄까 깡패들만 득시글거리고 모두가 빨갱이라고 바라보는 관점이 지금도 없지 않아 있다. 그리고 이런 편견은 생각보다 매우 매우 깊이 우리 머리 속에 내장되어 있다. 그래서 전 국민들에게, 특히 90년대 이전까지 대한민국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 전라도에 대한 인식은 기본적으로 부정적이다. 도대체 왜 전라도에 대한 이런 생각들이 생겼을까? 그리고 언제부터 생겼을까?
단언컨대 이런 전라도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은 위에 말한 고려시대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전라도에 대한 차별이 저 시대부터 있었던 것은아니다.
왕건이 저렇게 말한 것은, 우선 저기에서 말하는 차령산맥 이남과 공주강 밖이 우리 한반도 내에서의 문제인지 아닌지도 일단 확실하지 않지만, 일단 차령산맥 이남과 공주강 밖을 전라도라고 놓고 보자. 왕건이 전라도 사람을 기용하지 말라는 것은 전라도 땅과 관련이 있다.
나는 강원도 사람이다. 아침에 눈 뜨면 커다란 산이 눈을 가린다. 그래서 강원도 사람들은 좋게 말하면 욕심이 없다. 어차피 욕심 부려봤자 산을 넘어가기 어려우니까. 이게 많은 강원도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방법이다. 우리에게는 강이 있으려면 산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산 사이에 골짜기가 형성되고 그 옆으로 강이 흐르는 것이다. 강원도에 그냥 평지를 통해 흐르는 강은 많지 않다. 있더라도 그 주변에는 언제나 산이 둘러싸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평지에 흐르는 강이 있다. 바로 전라도다. 전라도를 가면 강이 평지에 흐른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넓은 논밭이 펼쳐져 있다. 그리고 당연히 그 땅에서 곡식이 자란다. 바로 이것이 왕건이 두려워한 것이다.
과거 농경사회에서 힘은 땅에서 나온다. 즉 농사에서 나온다. 그리고우리 한반도에서 가장 넓은 논밭은 전라도에 있다. 그래서 만의 하나 전라도 출신 장군이 흑심이라도 품으면 엄청난 재물을 모을 수 있고 이를 이용해 쿠데타를 일으켜 자신을 죽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왕건은 한 것이다. 잠재적인 부에 대한 두려움에서.
사실 전라도는 우리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이순신 장군이 계셨던 곳이 바로 전라도고 임진왜란 때 전라도가 지켜졌고 바다가 지켜졌기에 일본이 우리를 정복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이후 일제 시대가 도래하면서 전라도는 가장 많은 의병을 배출한 곳이다. 박은식은 “대체로 각 도의 의병을 말한다면 전라도(호남)가 가장 많은데…”라고 말했는데 이후 실제 의병활동 등을 보면 1908년 일본 군경과의 교전 횟수와 교전 의병 수에서 전라도는 각각 25%와 24.7%를 차지하였고 1909년에는 각각 47.2%와 60.1%를 차지하였다. 즉 우리 땅을 지키는데 가장 적극적인 곳이 전라도였다.
이후 일제시대에도 예를 들면 광주항일학생운동이 일어난 것도 전라도다. 전라도는 우리 땅의 외로운 버린 자식이 아니다.
그럼 도대체 언제부터 누구에 의해 전라도가 공격받기 시작했는가? 누구인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분명한 것은 이런 전라도에 대한 차별의 시작은 그 먼 옛날이 아니라 박정희와 김대중의 선거 때문이다.
킹메이커라는 영화가 있다. 설경구와 이선균이 주연한 영화다. 김대중이라는 인물이 엄창록이라는 선거꾼을 만나 선거에서 승리해 나가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이 엄창록이라는 인물의 선거 작전은 주로 네거티브. 이 영화는 사실인가? 물론 아니다. 이건 영화다. 하지만 영화 속에 적절하게 사실과 허구가 공존한다고 감독도 말했다.
이 영화 후반부에 가면 박정희 쪽에서 선거에 이기기 위해 전라도를 욕하는 장면이 엄청나게 나온다. 그리고 그 엄창록이라는 인물이 이 선거에 개입한 것처럼 묘사된다. 사실인지 아닌지 모른다. 아마 본인은 알겠지만 본인은 죽었으니 더 이상 어떤 것이 진실인지 모른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이 선거부터 시작해 전라도와 경상도라는 두 개의 앙숙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티비 등을 통해 전라도 죽이기는 계속되었다. 예를 들면 드라마의 모든 식모는 다 전라도 사투리를 썼고 깡패는 다 전라도 출신이었고… 하여간 이후부터 정말 짧은 시간 내에 전라도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전 국민에게 확산되었다.
이전에는 이렇게 짧은 시간에 이런 일이 생길 수 없었다. 왜? 방법이 없으니까. 하지만 티비가 보급되고 라디오를 통해 소식이 빠르게 이동하면서 이런 일이 그토록 짧은 시간내에 가능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방법은 수시로 필요할 때마다 사람들을 자극해 표를 모으는 방법이 되고 있다. 어떤 놈은 경상도에 가서 <우리가 남이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 말한 놈은 나중에 감방에 갔고 그런 선거를 통해 당선된 대통령도 나중에는 감방에 갔지만. 하긴 지금은 다시 나와있다.
이 전라도에 대한 이런 편견은 절대 존재해서는 안되는 이야기이다. 이 선거 이후 우리나라는 갑자기 동서로 분리가 되어 서로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었고 지금도 그게 해소되지 않았다. 오죽하면 자동차 번호판에 지역을 구분하는 아무런 숫자나 문자가 없을까…. 이건 명백하게 이래서는 안되는 이야기이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우리 조상들이 고구려 백제 신라라는 나라를 세웠고 물론 그 사이에 다른 작은 나라들도 있었지만 어쨌든 우리 모두는 단군이라는 하나의 조상에서 출발한 같은 피를 공유하는 동일한 민족이다. 물론 지역에 따라 지역색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게 우리나라에서 전라도를 지탄하는 것처럼 진행되어서는 안된다. 지금이라도 그 낙인을 완전히 지워 없애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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