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자꾸 이승만과 건국절에 대해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 헌법에도 1919년 임시정부를 대한민국의 시작으로 설정하고 있으므로 1948년을 건국절이라 말하려면 헌법을 개정한 다음에 할 얘기다.
또한 우리 역사에서 가끔 재평가라는 말이 들리는 인물이 둘 있다. 하나는 원균 또 하나는 이승만. 왜 자꾸 이런 가치 없는 논쟁이 수시로 튕겨져 나오는지 알 수가 없다. 그냥 둘 다 두 번 논할 가치가 없는 인물들이고 그냥 우리 역사에 없었으면 하는 인물들일 뿐이다.
박근혜가 아니라 이승만이다. 우리 역사에서 최초로 탄핵되었던 대통령은.
1919년 3.1운동 이후 우리 정부가 세워진다. 하지만 우리 땅을 빼앗겼는데 어떻게 이 땅에 정부를 세울 것인가? 그래서 상해에 세운 것이다. 그리고 여러 사건을 거쳐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되었다.
이때 이승만은 어디에 있었나? 미국에 있었다. 국민들이 낸 돈 받아서 그 돈쓰며 여자들과 미국 일주하며 여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통령으로 지명된지 1년이 넘도록 상해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대통령으로 지명됐으면 얼른 상해에 가서 항일 투쟁에 앞장서야 하지 않나?
이승만은 외교적으로 독립운동을 했다고 말한다. 그러면 대통령 사퇴하고 자기는 자기의 길을 가면 된다. 그런데 그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그냥 미국에서 여자들과 여행하며 놀고 있었다. 게다가 한 술 더 뜬다. 미국에 위임통치를 건의했다. 위임통치? 이건 완전 임진왜란 때 선조보다도 못한 경우다. 선조는 적어도 정부는 자식에게 넘겨주고 자기 혼자만 도망가려고 했지 이승만은 오히려 나라를 팔아 먹으려고 했다.
이 사건에 대해 신채호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이완용이는 있는 나라를 팔아먹더니 이승만이는 없는 나라까지 팔아 먹는구나.
상황이 이렇게 되너 결국 1920년 12월에 이승만은 상해에 왔다. 와서도 가관이다. 위임통치 문제에 대해 거부하고 대통령이 상해에 없을 때 국무총리에게 결재권 위임을 요청했더니 그것도 거부했다. 그리고 5개월 머물고 또 미국으로 갔다.
결국 탄핵당한다. 하지만 안창호 선생이 말려서 3년을 허송세월하고 24년에 이동녕의 대통령직 대리를 결의했다. 이승만은 또 여기에 반발한다. 헌법소원 같은 것을 내서 자기가 대통령이라고 우기고 그리고 미국 한인들이 모은 독립자금도 상해에 보내지 못하도록 막는다. 하지만 결국 25년 3월 23일 탄핵되고 박은식 선생이 임시 대통령이 된다.
이런 사람에 대해 뭐라고 재평가를 해야 하나?
사실은 이건 그냥 이승만에 대한 아주 간단한 내용이다. 이외에도 이 인간에 대한 평가는 너무 많고 재평가를 하겠다는 사람들은 정말 이승만에 대해 제대로 알면서 저런 얘기를 할까를 생각하게 만들 정도로 가치 없는 인물이다.
그리고 사실 다른 모든 것은 다 그냥 용서한다고 쳐도 때려 죽여도 용서 못할 일은 그가 바로 반민특위를 해체했다는 것이다. 즉 우리에게 왜곡된 현실을 그대로 물려 주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때 친일 청산만 제대로 했더라면 오늘날 싸우고 있는 문제의 대부분은 다 싸울 가치가 없는 얘기들이 된다. 하지만 이승만의 개입으로 친일파는 청산되지 못했고 그게 오늘날 우리 사회 문제의 대부분을 점하고 있다. 정말 아쉬운 일이다. 친일파만 청산했더라도 이승만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을텐데…
이 영상을 한 번 보자.
그 무능하고 우리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던 하지 중장은 이승만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했다.
이승만은 자신에게 주어진 권위에 대한 권리만 주장하고 의무는 전혀 이행하지 않는 용서받지 못할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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