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PLAY
김균형 작
등장인물
여자1 여배우 30대 초반
여자2 실직녀 30대 초반
여자3 살찐녀 30대 초반
남자 1인 다역
무대
어떤 고층빌딩 옥상.
PLAY
#1 뛰어 내릴까…?
조명 인되면 여자에게 조명, 음악 흐르고
여자1 
(분위기를 잡아 대사를 한다.) 결국 두주 일만에 나는 파리로 돌아왔습니다. 밤에 누구의 마중도 받지 않고 혼자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좌절과 절망의 오랜 방황으로부터도 돌아왔음을 알았습니다. 사람이 절망의 밑바닥까지 떨어지면 도로 올라올 수밖에 없다던 랑베르 의사의 말이 맞았는지도 모르지요. 나는 이제 어디에도 나를 도울 손길이 없다는 것을 압니다. 내가 내 자신을 도울 수 밖에요.
남자 
(박수를 치며 등장해서) 네. 좋아요. 야 많이 발전했는데. 이제 머지않아 영화로 진출해서 대종상이며 아카데미상이며 하여간 있는 상이란 상은 다 휩쓸겠어. 미리 미리 대종상 탈 때 멘트 좀 준비해 놓지 그래. 멋지게. 내 이름도 꼭 넣어서. <지금까지 제가 이 상을 탈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제 주변의 모든 친구들 그리고 저를 사랑하는 팬 여러분, 모두 감사합니다. 특히 오늘의 저를 이렇게 원숙한 배우로 만들어주신 연출가 장대식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좋아. 아주 좋아. 그런데 느낌의 깊이가 조금 부족한 것 같아. 뭐랄까, 그 인생의 깊은 맛 있잖아. 그런 맛이 아주 깊이 있게 우러나야 하는데 그게 좀 부족한 것 같아. 좀 더 짜 내야지. 가슴을 좀 더 열고. 숨을 깊게 들이쉬고. 우리 다시 한번 더 깊게 느끼면서 해 보자고.
여자1 
네. 어디부터 시작할까요?
남자 
그 대사 해 봅시다. <밤에 누구의 마중도 받지 않고 혼자 돌아왔습니다.> (혼자 분위기에 취해서) 야, 고독, 쓸쓸, 찬바람, 낙엽, 낙엽이 떨어져 뒹구는 길을 쓸쓸히 고독하게 걷는다. 찬바람이 귓가를 스친다. 시원하다. 그렇지만 그 시원함도 지금은 별로 느낄 수 없다. 죽인다. 분위기. 그냥 고독이 확 스며 나오잖아. 그 분위기를 잡아서 멋지게 한번 살려 보자고.
여자1 
(분위기를 잡고 시작한다) 밤에 누구의 마중도 받지 않고 혼자 돌아왔습니다.
남자 
아니야. 아니야. 아직도 부족해. 채워야지. 능력 있잖아. 그까짓 것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잖아. 자기의 능력을 십분 발휘해야지. 나는 세상에서 제일 미운 사람이 자기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사람이야. 자 다시 한번 해 보자고.
여자1 
(다시 분위기를 잡아서) 밤에 누구의 마중도 받지 않고 혼자 돌아왔습니다.
남자 
(약간 화가 나서) 아니야. 아니야. 아직도 부족해. 쓸쓸하게 미소 지며 손을 흔들고… 딸에게 이러고 돌아온 것 아니냐고? 응, 손 한번 흔들어 봐
여자1 
(손을 흔든다)
남자 
아니 그렇게 기계적으로 흔들지 말고. 무슨 로보트야? 좀 고독하게 여운이 묻어 나오게.
여자 
(남자를 따라 손을 흔든다)
남자 
쓸쓸하게. 고독하게, 안녕. 잘 있어. 파리에서 보자. 그래. 흑흑. 봐 분위기 나오잖아. 야, 끝내주네. <밤에 누구의 마중도 받지 않고 혼자 돌아왔습니다.> 캬, 이거 소주 한잔 해야 돼. 우리 연습 조금 있다가 하구 소주 한잔 하구 할까? 야, 술 땡긴다. 이 진한 삶의 고뇌가 녹아 있잖아. (노래 부른다)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여. 대사 속에. 그 대사가 생명을 얻어서 튀어 나와야 한다 이거야. 그래서 그것이 관객의 가슴에 깊게 박혀야 한다고. 그래야 관객도 자리에 앉아서 소름이 쫙쫙 돋으면서 감동할 거 아니야. 예술은 감동이다. 오케이?
여자1 
해 보겠습니다.
남자 
잊지 말아야 돼. 관객은 돈을 내고 온단 말이야. 돈. 그리고 그 낸 돈이 아까우면 짜증을 낸다고. 관객은 아주 무서운 빗 독촉장이들이지. (객석을 가리키며) 봐, 저 사람들 눈빛을. 누가 뭘 잘못하나 누가 내 돈을 떼어먹지는 않나를 관찰하려고 눈이 다 가로등처럼 커져 있잖아. 그러니까 우리는 저 사람들이 낸 돈이 아깝지 않도록 어떻게든 해 줘야 할 의무가 있다 이런 얘기야. 어이 조정실, 음악 좀 줘봐. 우리 분위기를 쫙 깔고 하자고.
음악 흐른다.
여자1 
밤에 누구의 마중도 받지 않고 혼자 돌아왔습니다.
남자 
에이. 이거 오늘 왜이래? 오늘 매직이야? 오다가 지하철 문틈에라도 꼈어? 뭐 무슨 분위기가 이렇게 안 잡히느냐고? 먼저 절망으로 쫙 들어가야 할 것 아니야. 그래서 그 절망으로 완전히 시꺼멓게 된 이후에 거기에서 서서히 솟아 나와야지. 그 절망이 안보이잖아 지금은. 정말 왜이래? 애인이 자살이라도 했나?
여자1 
다시 한번 더 해보겠습니다. (긴장해서 건성으로) 밤에 누구의 마중도 받지 않고 혼자 돌아왔습니다.
남자 
(화가 나서) 아니라고. 그렇게 해서는 전혀 분위기가 안 살잖아. 보다 가슴을 쥐어 짜면서, 응, 그 저 끝이 보이지 않는 심연, 왜 잠자다가 그런 곳으로 한없이 떨어질 때 있잖아. 가위 눌릴 때. 그냥 정신이 없고 뭔가 돌고 아 이제 끝이로구나. 무섭구나. 뭐 이런 사전 분위기가 있어야 할 것 아니냐고?
여자1 
저도 지금 잘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남자 
그래? 그럼 우리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 보자고. 일단 먼저 그 절망 장면을 해 보자고. 그리고 그 절망에서 돌아오다. 이렇게 상황을 진행시켜보면 훨씬 더 이해가 빠를 테니까. 그 <완전히 절망에 빠진 것도 아녜요>. 부터 하자고. 그 장면이 완벽하게 이해가 돼야지.
여자1 
(비참하게 웃으며) 완전히 절망에 빠진 것도 아니에요. 그이가 때때로 희망을 주는걸요. 절망과 희망 사이를 애매하게 오락가락 하는 건 완전한 절망에 빠진 것보다 더 괴로워요. 마치 나치의 고문수법 같지 않아요? 노엘리에게 완전히 빠져있으면서도 나를 단념할 수 없다는 거예요. 노엘리는 그이와 아주 함께 살려고 집을 내놓았다는데 그이는 오늘 아침에도 내게 전화를 했어요. “여보 잘 잤어? 오늘 출발하니까 곧 만날 수 있을 거야… ” 하고…
남자 
(대충 박수를 치며) 자 이러지 말자고. 맘에 안들어. 그렇게 해서 어떻게 연기를 하겠어? 그렇게 해서 어떻게 관객을 감동시키고 관객을 내 품으로 끌어들이겠냐고? 도무지 감정이 살아있지 못하잖아. 어떤 연극에서는 마지막 장면에 배우들이 모두 옷을 벗어. 왜? 관객에게 감동을 주지 못했으니까 옷이라도 벗어서 알몸이라도 보여 주어야겠다는 거지. 대사 그렇게 치고 옷 벗을래? 다시 지금 연습하던 대사로 돌아가자고.
여자1 
<밤에> 요?
남자 
그래. 그리고 난 정말 능력 없는 여자 싫어. 이 땅에서 모두 사라져줬으면 좋겠어. 아니면 일찌감치 시집이나 가서 애나 키우고들 살던지. 능력도 없으면서 뭘 하겠다고 설치면 뭐가 되나? 그렇다고 자기 얘기는 아니야. 하지만 스스로 능력이 없다고 느끼면 빨리 이 업계에서 뜨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라고.
여자1 
연출 선생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남자 
또! 난 열심히 하라고 안했어. 잘하라고 했지. 잘 하지도 못하면서 열심히 하면 그게 무슨 소용이냐고? 우린 철저하게 보여지는 것으로 평가 받는다는 거. 도중에 무슨 고난이 얼마나 있었는지, 배우들이 얼마나 고생하며 연습을 했는지 관객은 아무도 그런 것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거. 그리고 오로지 공연 순간에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만으로 평가 한다는 거. 잊지마. 자 해 보지.
여자1 
밤에 누구의 마중도 받지 않고 혼자 돌아왔습니다.
남자 
혹시 배고프지 않아?
여자1 
아니요.
남자 
내가 보기엔 배가 고픈 것 같은데.
여자1 
아니에요.
남자 
(꽥 소리를 지르며) 내가 배부르게 해줄게. 십 개월 동안. 조금 전에 애 키우라고 했더니 지금 애 키우려고 그렇게 대사 치는 거지?
여자1 
아니에요. 전 정말 열심히 하고 있어요.
남자 
그렇게 목석같이 대사나 외우고 있으려면 뭐 하러 여기 나와서 욕먹으면서 이짓해? 열심히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찾으면 될 것 아니야? 무슨 핫도그를 팔던지 아니면 뻔데기를 팔던지. 그것도 아니면 어디 비디오 방이라도 가서 비디오라도 빌려주고 있던가. 여기는 열심히 보다 잘 하는 것이 더 필요한 곳이야. 알겠어? 자 다시 해 보자고.
여자1 
(눈치를 살피며) 결국 두주 일만에 나는 파리로 돌아왔습니다. 밤에 누구의 마중도 받지 않고 혼자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좌절과 절망의 오랜 방황으로부터도 돌아왔음을 알았습니다.
남자 
이 여자가 나이가 몇이야? 나이 마흔 네 살. 그래 마흔 네살에 말 그렇게 하겠냐고? 도무지 첫 대사부터 마음에 안들어. <결국 두 주일 만에 나는 파리로 돌아왔습니다.> 이게 뭐냐고? 응? 이게 지옥 끝까지 갔다 온 사람이 말하는 스타일이냐고? 골프라도 치다 골프공에라도 맞았어? 도대체 왜이래? 이렇게 해서 관객들이 공감하겠어? 응? 결혼생활 22년만에 남편이 외도를 했고 집 나가고 가출하고 결국 딸한테까지 갔다가… 딸한테서도 <왜 당신이 일찍 당신의 인생을 생각하지 못하고 남편에게만 매여서 살았느냐? 자기의 인생은 자기 스스로 가야한다. 나는 엄마에게 동의할 수 없다.> 정말 인생 비참한 상태 아니야? 그렇게 된 상태에서 그래 인생아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살아보자, 이렇게 얘기하는데 그렇게 밖에 표현이 안되겠냐고?
여자1 
죄송합니다. 제가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남자 
뭐라고? 경험? 그럼 죽는 연기하려면 죽는 경험을 해 봐야 한다는 거야? 맞는 연기하려면 실제로 두드려 맞는 경험을 해야 하고, 사랑하는 연기하라면 실제로 섹스를 하면서 경험해 보아야 하겠네. 이거 왜이래? 그래 그런 생각으로 연기하겠다고 이러고 있단 말이야?
여자1 
아니, 제 말씀은 그게 아니라. 죄송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남자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해보자고. 앞으로 2주면 공연이야. 2주밖에 안남았는데 그 수준이면 곤란하지.
여자1 
어느 부분부터 할까요?
남자 
아무데나 시작해.
여자1 
결국 두 주일만에 나는 파리로
남자
 다시
여자1 
결국 두주일 만에 나는
남자 
다시
여자1 
결국 두주일만에
남자 
다시
여자1 
(사이)
남자 
왜 안해? 왜 가만있어?
여자1 
죄송합니다.
남자 
그 죄송하다는 얘기 듣기 싫으니까 죄송하지 말고 다시 해 보자고. 빨리 해봐.
여자1 
(남자의 눈치를 살피며) 결국 두주일 만에 나는 파리로 돌아왔습니다. 밤에 누구의 마중도 받지 않고 혼자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좌절과 절망의 오랜 방황으로부터도 돌아왔음을 알았습니다. 사람이 절망의 밑바닥까지 떨어지면 도로 올라올 수밖에 없다던 랑베르 의사의 말이 맞았는지도 모르지요. (멈춘다)
남자 
왜 더하지? 그게 끝이야? 계속 연기할 생각인가? 도저히 가능성이 없겠지? 이제 끝내. 그걸 연기라고 하고 있어? 길거리 초등학생을 불러 시켜도 그것보단 낳겠다. 정말 밥이 아깝다 밥이 아까워. 내가 뭐가 잘못돼서 너 같은 목석을 이 역할에 캐스팅했는지 모르겠다. 내가 잠시 돌았었나? 에이 신경질 나.
무대를 훌쩍 뛰어 넘어 사라진다.
여자1 
(남자가 사라진 쪽을 보고 있다가 주머니에서 전화를 꺼내) 여보세요 (반갑게) 꼴레뜨 잠 깼구나. 어떻니? 열은 좀 내렸어? 저녁은? 장 삐에르와 같이 먹었어? 네 신랑 착하구나. 일찍 일찍 들어와서 네 시중도 잘 들어 주고… 아빤 아직 안들어 오셨어 응. 여행에서 돌아오더니 더 바빠지신 모양이야 그래 무쟁에서 돌아온지 사흘이나 됐는데 아직 저녁 한번 같이 오붓하게 들어본 일이 없단다. 약은 먹었니? 응 낮에 너희 집에 갔다가 네가 약을 먹고 잠들었길래 대강 집안을 치워 놓고 왔어 할 수 있니? 주부가 병이 나면 집안 어수선해지는거야 어쩔 수 없지 뭘… 응… 그래… 이제 그만 끊자. 장 삐에르가 좋아하지 않을거야. 젊은 남자들은 제 아내가 친정 식구들하고 너무 가까운 것도 질투한단다. 그래 그래 약 먹고 푹 자라. 내일 낮에 들를께. 응 안녕.
전화를 끊고 가방을 연다. 과거에 받았던 트로피며 출연했던 공연의 프로그램 혹은 소품으로 썼던 가발이며 머플러 등등을 꺼내놓고 써보기도 하면서 과거를 회상한다. 아마도 약간의 웃음이 함께… 회상을 끝내고 결심을 하고 옥상 끝으로 간다. 뛰어 내릴 준비를 한다.
여자2 
(등장해서 여자1을 관찰하다가 뛰어 내리지 않는 것을 보고 은근히 부추기며) 빨리 뛰어라. 망설이지 말고. 마음 먹었을 때 뛰어야 하는 거야. 그렇게 두려움을 느껴서는 안돼. 용기를 가지고. 어차피 누구나 한번은 죽게 마련이니까. 자 준비. 하나, 둘. 셋
여자1 
그렇게 재촉하지마. 나도 지금 용기를 내려 애쓰는 중이야.
여자2 
그래? 그럼 내가 여기서 지켜보고 있을게.
여자1 
(뛰려다가 뒤돌아보고) 아니야. 그렇게 서서 쳐다보지 말고 차라리 날 좀 밀어줘. 용기가 제대로 안나. 저 아래를 보니까 너무 높아서 현기증이 난다. 저 아래로 떨어지면 아플까?
여자2 
아프겠니? 그냥 순간적으로 모든 일이 벌어질텐데. 아마도 아무런 느낌이 없을지도 몰라. 아니 어쩌면 떨어지는 동안 이미 무서워서 졸도해버릴지도 모르지.
여자1 
그럴까? 그럼 뛰어 내리면서 확실하게 졸도하게 몽둥이를 하나 들고 뛰어 내릴까? 그리고 한 20층쯤 내려갔을 때 머리를 세게 때리면 확실하게 졸도할 거 아니야.
여자2 
차라리 수면제를 먹어라. 그리고 졸리면 뛰어 내리는 거야. 그러면 자면서 뛰어 내릴 것 아니야. 그렇게 되면 아무 것도 느낄 수 없이 확실하고 깨끗하게 죽을 것 아니냐고.
여자1 
수면제를 먹고 뛴다고?
여자2 
그래. 수면제. 아 참 그건 안되겠다. 잘 못하면 죽지 못할 수도 있는 방법인 것 같다. 거 왜 비행기가 떨어져도 살아남는 사람들이 있다잖아. 그 사람들이 아마 대부분 잠자고 있던 사람들일거야. 그러니까 자면서 떨어지면 죽지도 못한다는 얘기지.
여자1 
그거 정말이야? 믿을만한 이야기야?
여자2 
그럼. 거 왜 무의식인가 뭔가 하는 것이 어쩌고 해서 그렇다는거 아니야. 그나 저나 안 뛰어 내릴거니? 벌써 몇 번째냐? 매번 뛰어내릴 듯만 하다가 안 뛰고. 정말 나도 짜증난다. 이거 옥상에 올라와서 매번 뛸까 말까를 시도하는, 그래 너 기네스북에 올라야 되겠다. 내가 전화해서 기자들 불러줄 테니까 기네스북에 올라라. 자살시도 세계 기록녀.
여자1 
그럼 니가 먼저 한번 뛰어봐라. 수면제 먹고도 뛰고 몽둥이도 들고 뛴 다음에 어떤게 덜 아프고 또 어떤게 덜 무서운가 나한테 얘기를 해주면 되지 않겠어? 그럼 내가 그 중에서 덜 아프고 덜 무서운 방법으로 확실하게 뛰어 내릴게.
여자2 
야, 뛰면 죽는데 어떻게 얘기를 해?
여자1 
기절하거나 잠들면 안 죽을 수도 있다면서? 비행기에서 잠자던 사람들은 죽지 않았다면서?
여자2 
그거야 말이 그렇다는 거지. 내가 어떻게 정확하게 알겠니?
여자1 
그래. 하긴 생명이란 하나님이 주신 거니까. 하나님. 저에게 말씀을 해 주십시오. 어떻게 하면 아프지 않고 무섭지 않게 이곳에서 떨어져 죽을 수가 있겠습니까? 저는 정말 하나님의 게시가 필요한 사람입니다. 왜 수많은 사람들에게 게시를 주시면서 저에게는 유난히 게시를 주지 않으시는 겁니까? 제발 저에게도 어떻게 쉽게 뛰어내릴 수 있는지 게시를 주십시오. 아멘.\
여자2 
아, 그래. 게시가 왔다. 조금 전에 내가 하나님 만나서 게시를 받았다. 게시는 진통제를 먹으라는 거야. 한꺼번에 수십 알을 먹으면 아무리 아프더라도 못 느낄 거 아니냐고?
여자1 
진통제?
여자2 
그래 진통제. 통증을 진정시켜 주는 약. 그러니까 그 약을 먹으면 뛰어 내려 땅바닥에 부딪치더라도 아프지 않을거 아니야. 이게 하나님의 게시니라.
여자1 
역시 하나님 끝내 준다. 어떻게 그런 기가 막힌 생각을 했을까?
여자2 
그러니까 전지전능 아니니? 하나님이 이런데서 뛰는 사람들 한 두 번 면담해 봤겠냐? 그리고 그 사람들 얘기를 오죽 많이 들었겠냐고? 그러니까 아마도 하나님이 자살의 대가는 대가일거야. 봐라. 너도 좀 전에 기도하니까 곧바로 해답이 오지 않니?
여자1 
그래 맞아. 그거 좋은 생각이다. 진통제를 먹고 뛰면 되겠다. 한 50알 먹을까? 가만히 있어봐. 수면제를 한 200알 먹으면 죽는다니까, 그럼 진통제도 한 200알쯤 먹어야겠다.
여자2 
200알? 그렇게 많이 필요하겠어?
여자1 
필요해. 나 진통제 좀 사다 줘.
여자2 
내가? 왜? 난 자살 방조죄로 감방 가기 싫다.
여자1 
그러지 말고 좀 사다 줘라. 더구나 난 돈이 없단 말이야.
여자2 
(버럭 소리지르며) 야! 그럼 말아. 돈도 없으면서 뭘 죽으려고 해. 죽는 것 다 취소해. 돈이라도 있어야 죽는거지 아무나 죽을 수 있는 건 아니야. 왜 사람들 죽을 때 노자 하라고 관에 돈 넣는 것도 모르냐? 돈이 있어야 죽어서도 대우 받는거야. 돈도 없이 죽어서 뭘 어떻게 하려고 하냐? 응? 그 왜 그 무슨 강이냐? 죽어서 천당이든 지옥이든 가려면 건너야 하는 강 있잖아
여자1 
한탄강?
여자2 
무슨 한탄하다 죽을 일 있냐? 그거 말고 왜 저승사자하고 같이 배타고 건너는 강 있잖아.
여자1 
아, 극락강?
여자2 
극락강은 광주 광역시 서구와 광산구를 구분하는 영산강 지류를 말하는 거고.
여자1 
그럼 무슨 강?
여자2 
너 배우 맞냐?
여자1 
왜?
여자2
무슨 배우가 그렇게 무식하냐? 배우면 읽었던 대본만 해도 엄청나게 많을텐데. 그러면 적어도 상식에는 박사가 돼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여자1 
나는 주로 대사 없는 실험극만 했거든.
여자2 
잘 났다. 잘 났어. 그 왜 강 이름 좀 생각해봐. 그리스 신화에서는 부인을 사랑한 오르페우스가 그 강을 건너려고 강을 지키는 사공하고 개한테 돈을 주는 대신 거문고를 쳐 주고 건넜다는 거 아니야. 그리고 그 부인을 데리고 돌아 오다가 부인이 잘 따라오나 확인하려고 뒤를 돌아보는 바람에 끝장났잖아.
여자1 
그런 일이 있었어? 야, 너 생각보다 무척 아는 것 많다. 그리스 신화라.
여자2 
그런걸 상식이라고 해. 그래. 상식 얘기 나온 김에 한가지 더 얘기해 볼까?
여자1 
그래 얘기해봐.
여자2 
너 트로이 목마라고 알지?
여자1 
그럼.
여자2 
그게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니?
여자1 
그건 트로이를 쳤던 그리스 군대가 10년이나 전쟁을 해도 트로이를 이길 수 없어서 마지막으로 그 거대한 목마 안에 군대를 숨겨놓고 철수하는 척 하면서 작전을 써 가지고 트로이를 함락시키기 위해 만든 거지.
여자2 
그건 어떻게 알았냐? 네가 출연했던 실험연극이냐?
여자1 
이거 왜 이렇게 사람을 무시해? 그럼 너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뭔지 알아?
여자2 
알다마다. 사랑 아니니? 아, 사랑. 듣기만해도 가슴이 떨리는 너의 이름. 아, 사랑, 생각만 하여도 가슴이 시려오는 너의 이름.
여자1 
사랑이란 웬지 모른척 해도 관심이 있는게 사랑이야 그대 믿을 수 없어 애타는 마음이 사랑이야 그대 소중한 것을 모두다 주는게 사랑이야 사랑이야
여자2 
야, 너 실험연극 많이 했구나.
여자1 
이건 실험연극이 아니고 노래 가사야. (노래 부른다) 사랑이란 웬지 모른척 해도 관심이 있는게 사랑이야.
여자2 
그래. 참 너 아는거 많아서 좋겠다. 그런데 우리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더라?
여자1 
(불쑥) 강에 다리 놓는 얘기.
여자2 
강에 다릴 놓는다고?
여자1 
그래 무슨 강에다 다릴 놓는다며?
여자2 
다리라니? 다리는 갑자기 무슨 다리야?
여자1 
거 무슨 강이 있다며. 그 강은 배타고 건넌다며. 그러니까 배타고 건너는 대신 내 얘기는 그 강에 다리를 놓자 이런 얘기야.
여자2 
다리를 놓는다고?
여자1 
그래. 다리를 놓자고.
여자2 
그래. 좋다. 그런데 그 강에 다리 놓으려면 빨리 너도 죽어야지. 죽어서 그 강에 도착해야 다리를 놓던 헤엄치든 할 거 아니냐고? 근데 그 강 이름 좀 빨리 기억해 봐라.
여자1 
스틱스강
여자2 
그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강이고.
여자1 
요단강.
여자2 
그건 기독교 얘기고. 불교에서는?
여자1 
삼도천
여자2 
그래. 삼도천. 근데 왜 그 강 얘기를 하고 있었더라?
여자1 
왜냐하면 죽어서도 돈이 필요하다 이런 얘기를 하고 있었지. 배타고 강 건너려면 돈을 주어야 할 거 아니냐고? 그래야 천당이든 지옥이든 갈 거 아니니. (말하며 아래를 내려다 보고 깜짝 놀라서 뒤로 빠지며) 정말 답답하다. 한없이 답답하다. 그냥 눈감고 확 뛰고 싶은데 그러려니 너무 무섭고 또 아쉬움도 많고.
여자2 
그럼 그만두면 되지. 그리고 더 열심히 살면 되지.
여자1 
그러게 그럼 되는데 그게 문제야. 우리 연출은 열심히 보다 잘 하는걸 요구하거든. 아, 고민이다.
한 쪽 구석에 앉는다.
여자1 
그건 그렇고 넌 왜 죽으려고 하니?
여자2 
이미 얘기했잖아. 벌써 몇 번째 똑 같은 질문만 하고 있니?
여자1 그랬었나? 그게 뭐였지?
여자2 
난 그러니까 (잠시 생각하다가) 조국과 민족을 위해 죽는 거지.
여자1 
조국과 민족을 위해 죽는다고?
여자2 
그래. 난 이 땅을 구원하기 위해 태어난 인간이야. 그 옛날에 프랑스에 잔다르크라는 여자가 있었잖아. 난 내가 바로 그녀라고 느껴. 내 속에는 이 전에는 경험하지도 못했던 엄청난 힘이 흐르고 있어. 조국을 구하려 자신의 한 몸 돌보지 않고 과감하게 전장에 뛰어 들어 조국을 구했던 그 힘. 나는 바로 내 나라를 구하기 위해 뛰려는 거야.
여자1 
잔 다르크?
여자2 
그래. 잔 다르크. 잔 다르크가 아닌가? 맞아. 잔 다르크야. 그러니까 잔 다르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거야. 그때 상황이 어땠냐? 영국이 쳐들어와서 프랑스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이 흔들리던 때야. 그때 바로 잔다르크가 나타나서 프랑스를 구한거야. 나는 내 속에 그녀의 피를 느낀다니까.
여자1 야, 니 얘기 들으니까 나도 내 과거가 생각나. 나도 조국을 구하기 위해 내 한 몸 초개와 같이 버렸었지. 참 옛날 얘기였어.
여자2 
그래? 넌 누구였었는데?
여자1 
난 그렇게 멀리서 태어나지 않았었지. 바로 이 땅에 태어났었지. 적군 왜장을 내 팔에 안고 차가운 남강의 깊은 물속으로 뛰어들었던 논개. 그게 바로 나였어.
여자2 
그 얼굴에?
여자1 
내 얼굴이 뭐가 어때서?
여자2 
논개면 기생 아니야?
여자1 
그래. 기생.
여자2 
그런데 기생이라면 한 인물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여자1 
야 이 정도면 한 인물 하지. 오똑한 콧날, 아름다운 볼, 이 커다란 눈, 그리고 늘씬 날씬한 몸매. 죽이지?
여자2 
그래. 죽인다. 나 죽는다. (뛰려 한다)\
여자1 
잠깐 기다려.
여자2 
왜?
여자1 
얘기가 다르잖아. 뛰어야 하는건 바로 나라고.
여자2 
그게 무슨 소리야.
여자1 
그러니까 나는 그 잔다르큰가 뭔가가 어디서 뛰어내려 자살했다는 소리는 못 들었다. 대신 논개는 바로 강물로 뛰었지. 강물이 별거냐? 요새는 강물도 다 오염돼서 별로 뛸만한 곳이 못돼. 이렇게 공기 좋은 곳에서 뛰면 뛰면서도 상쾌할 것 아니니?
여자2 
그럼 잔다르크는 어떻게 죽었는데.
여자1 
그걸 내가 어떻게 아니? 참. 네가 잔다르크였었다며. 그런데 자기가 어떻게 죽었는지 모른단 말이야.
여자2 
아, 혹시 강물에 뛰어든건 아닌가? 그 오를레앙 강에.
여자1 
누가 오면 혹시 물어보자.\
여자2 
아니 확실해. 내가 이렇게 자꾸 뛸 생각만 하는거 보면 분명히 잔다르크가 강에 뛰어 들었을거야.
여자1 
야, 그럼 잔다르크나 논개나 똑 같은 기생인가? 아니 성년가? 에라 모르겠다. 야 저 밑에다가 소리 질러서 한번 물어봐라. 혹시 누가 듣고 대답이라도 할 줄 아니?
여자2 
그래 그거 좋은 생각이다. (아래를 향해 소리를 지른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혹시 잔다르크가 어떻게 죽었는지 아시나요? 잔다르크가 어떻게 죽었는지 아느냐고요? (바라보다) 대답이 없다. 하긴 이렇게 높은 꼭대기에서 소리를 지르는데 누가 들을 수 있겠니?\
여자1 
그런데 참 우리가 누가 죽은 얘기를 하고 있었더라? 잔다르크냐 논개냐?
여자2 
나도 몰라. 하여간 죽은 건 확실하잖아.
여자1 
그래 맞아. 하여간 죽었으니까. 그걸로 끝이지.
여자2 
어쨌든 나는 높은데만 서면 뛰어 내리고 싶어. 잔다르크가 물로 뛰어서 죽었는지는 몰라도 분명 어렸을 적에라도 자주 높은 곳에서 뛰었을 거라고.
여자1 
야, 쓸데없는 소리 그만해라. 이제.
여자2 
그래 이제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자. 그런데 이런 얘기를 안하면 무슨 얘기를 하냐? 죽으러 이 옥상에 올라와서 겁이나 제대로 뛰지도 못하는데.
여자1 
그 말도 맞아. 사실 우리가 하려는 일이 매우 중요하고 심각한 일인데. 우리 이제는 좀 진지한 얘기로 화제를 바꿔볼까? 그런데 진지한 얘기를 뭘 하겠어? 죽기 전에 진지한 얘기라, 그러면 그건 자기 삶에 대한 넋두리 밖에 더 되겠어? 그럼 그건 너무 처량해. 정말 인생 우스워지는 거지. 밝게 웃으면서 죽어야지. 처량하게 한탄하고 욕하고 울면서 죽을 수는 없잖아. 설사 지금까지 내 인생이 괴로웠더라도 죽을 때만은 모든 것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죽어야겠지. 안 그래? 그런데 얘가 올 시간이 된 것 같은데.
여자2 
누구?
여자1 
왜 있잖아. 매일 이맘때 쯤이면 항상 나타나는, 뭐랄까? 친구랄까? 여자!
여자2 
아, 그 여자.
여자1 
아니 어제 혹시 혼자 뛰어 내린 건 아닐까?
여자2 
설마. 그럴리가. (열심히 아래를 내려다 본다. 둘이 함께)
여자1 
아무런 흔적도 없는데.
여자2 
그러게. 뛰어 내렸으면 하다 못해 무슨 피라도 남아 있어야 할 거 아니야.
여자1 
참. 우리도 바보지. 만일 뛰어 내렸다면 오늘 아침 신문에 났을 거 아니야.
여자2 
그렇지. 너 혹시 신문 가지고 있니?
여자1 
아니.
여자2 
그럼 아침에 신문 보았니?
여자1 
아니.
여자2 
그럼 뛰었는지 안 뛰었는지 모르는 것 아니야.
여자1 
그렇지.
여자2 
그런데 우리 지금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거니? 내가 너에게 뭔가 질문을 했던 것 같은데.
여자1 
나한테? 무슨 질문? 맞아 그래 질문했어. 뭔가 물어보긴 물어 봤었는데. 그런데 나도 모르겠다.
여자2 
우리가 머리가 나쁜가보다.
여자1 
우리?
여자2 
그래. 우리.
여자1 
무슨 소리야. 너라면 몰라도 나는 그렇지 않아. 내가 수십 페이지짜리 대본을 쉽게 외우는 걸 보더라도 너하고 나를 같이 놓지 말아라.
여자2 
넌 주로 대사 없는 실험연극만 했다며? 그럼 백지 수십 페이지 외우기도 힘들기는 힘들겠다. 그래 넌 머리 좋다. 나는 머리가 좋지 않아서 녹음기라도 매일 들고 다니면서 항상 녹음이라도 해야겠어. 요새 들어 왜 이렇게 자꾸 잊어버리는게 많은지 모르겠어.
여자1 
잊어버리는 얘기하니까 재미난 얘기가 하나 생각났다. 내가 대학 다닐 때 들은 얘긴데 그때 교수님 중 한 분이 독일에서 유학을 했대. 그런데 어느 날 수퍼에 가서 물건을 잔뜩 사서 차에 다 싣고 출발해서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대. 그런데 뭔가 허전하더라나? 뭔가 잊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는 거야. 왜 있잖아. 사람들 가끔씩 차 위에 커피나 가방 같은 것 그냥 올려놓고 출발하는 일. 그런 것처럼 뭔가를 다 싣지 않고 출발한 느낌이 들더라는 거지. 그런데 실제로 하나를 안 싣고 출발했지. 뭔지 알아? (잠시 사이) 와이프!
여자2 
되게 우스웠겠다. 그러고 보면 완벽한 인간이란 없어. 내가 한 때 좋아하던 남자가 있었지. 정말 무척 좋아했었으니까. 난 적어도 그는 완벽하다고 믿었었거든. 그런데 마찬가지야. 남자들은 다 늑대들이더라고.
여자1 
왜 무슨 일이 있었는데?
여자 3 등장, 등장하자마자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뛰어 내리려 돌진한다. 그리고 뛰어 내린다. 둘은 깜짝 놀라 잠시 넋을 잃고 있다가 살펴 보러 가는데)
여자 3 
(밑에서 소리를 지른다.) 그렇게 있지 말고 나 좀 끌어 당겨줘.
여자2 
뭐야? 아직 안 떨어졌어?
여자1 
어떻게 된거야? 난 떨어졌는줄 알았잖아
여자2 
분명 떨어지긴 떨어졌어.
여자1 
나도 분명히 봤는데.
여자2 
그럼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뛰어 가 보고 웃으며 여자 3을 끌어 올린다.
여자3 
( 다 올라와서) 야, 이 치사한 년들아. 사람이 죽는다고 뛰어 내리면 말려야 할 것 아냐? 죽을 뻔 했잖아.
여자2 
아니 그럼 너 죽으려고 뛰어 내린 것 아니었어?
여자3 
그래. 죽으려고 뛰었지만 안 죽었잖아. 그 놈의 유리창 닦는 곤돌란가 뭔가는 왜 하필 거기에 있느냐 말이야. 내가 무슨 기네스 북에 오를 일 있냐고? 죽으려고 뛰었다가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곤도라에 걸려 죽지 못한 년. 그리고 너희들도 둘씩이나 있으면서 그거 하나 못 말리냐? 왜 그냥 뛰게 하느냐고. 아니면 제대로 뛰어서 그냥 죽게 놔두던가? 저 곤도라 너희들이 저기에 옮겨 놓은거지?
여자2 
(웃으며) 그래. 내가 옮겨 놓았다. 너를 사랑해서 죽지 말라고 내가 옮겨 놓았다. 이제 됐냐? 그렇게 용기 있는 척 애쓰지마. 너 죽는다고 누가 알아 주냐? 괜히 객기부리다 시집도 못 가고 죽어서 처녀 귀신 된 다음에 남자들 겁이나 주지 말고 그냥 살아.
여자3 
뭐라고? 난 그렇게 못해. 난 죽고 싶어. 알아? 난 죽고 싶다고. 날 말리지마. 난 죽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어.
여자2 
그 이유가 뭔데? 한번 들어보자.
여자3 
이유? 얘기했잖아. 왜 너희들은 나만 보면 이유를 얘기하라고 난리냐? 세상의 모든 일이 다 이유가 있어야 하냐? 이유 좀 없을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사람들 붙잡고 물어봐라. 뭐든지 항상 이유가 있나? 뭐 모든 죽음엔 이유가 있다. 처녀가 애를 낳아도 이유가 있다. 이유가 있긴 무슨 이유가 그렇게 있어? 어떻게 하다 보니까 잠 들어서 교통사고로 죽는 거고. 그냥 한번 어떻게 하다 보니까 애 들어선 것 몰라서 애 낳는 거고? 뭐 그냥 그렇고 저렇게 사는 거지. 그렇지 않아도 난 그 이유 때문에 아주 머리 아파. 오늘도 하루 종일 이유만 생각했어. 내가 지금 이렇게 이유를 생각하는 이윤 뭘까? 제발 나에게 이유를 묻지 말아줘. 도대체 왜 나만 못 잡아 먹어서 난리냐고?
여자1 
우린 가만히 있었다. 봐라 지금도 우린 가만있고 너 혼자 설치고 있잖아. 그리고 네가 이곳에 올라온 이후로 난리치고 설친 것도 너지 우리가 아니야. 우리는 하늘에 맹세코 가만히 있었다니까. 그런데 웬 난리를 찾니?
여자3 
그래. 내가 왜 죽어야 하냐 하면 말이다. 왜 죽긴 왜 죽냐? 살기가 싫으니까 그렇지. 그냥 삶이 너무 권태로워. 나는 뭔가를 하고 싶은데 너무 평범해. 그냥 죽고 싶을 뿐이야. 아침에 일어나 아침 먹고 직장에 출근해 그리고 일하다 점심 먹고 집에 돌아와. 집에 돌아오면 저녁 먹고 잠 자고 일어나서 또 아침 먹고 출근해서 점심 먹고 집에 돌아와 저녁 먹고. 아침 먹고 점심 먹고 저녁 먹고 또 아침 먹고 점심 먹고 저녁 먹고, 또 아침 먹고 점심 먹고 저녁 먹고. 그냥 하루 세끼 차곡 차곡 챙겨 먹고. 그렇다고 뭘 대단하게 하는 것도 아닌데, 그냥 아침 먹고 점심 먹고 저녁 먹고 또 아침 먹고 점심 먹고 저녁 먹고. 하루 종일 먹는 일만 하려니까 턱도 아프고 그냥 사는게 싫어.
여자1 
하긴 그래. 아침 먹고 점심 먹고 저녁 먹고.
여자2 
아침 먹고 점심 먹고 저녁 먹고.
여자1 
그런데 그 얘기 듣고 보니까 정말 그렇다. 우리가 매일 똑 같은 일상에서 반복적으로만 살아가고 있잖아. 아침 먹고 점심 먹고 저녁 먹고
여자2 
그렇지. 일상이라? 무료하게 반복되는 일상. 매일이 똑 같은 일상. 출근하는 똑 같은 길, 똑 같은 버스, 똑 같은 일, 똑 같은 책상. 똑 같은 사람들, 똑 같은 숟가락, 똑 같은 젓가락, 그리고 또 똑 같은 밥 그릇.
여자3 
뭐 쇼킹하고 획기적이고 신선한 탈출구가 없을까?
조명 바뀌고 멋진 남자 등장
남자 
(여자 3에게) 우리 데이트나 한번 할까요? 어디로 갈까요? 산으로 강으로 아니면 바다로?
여자3 
가죠. 어디든. 산도 좋고 강도 좋고 바다도 좋아요. 하루 종일 먹지만 않는다면. 난 정말 싫어요. 아침 먹고 점심 먹고 저녁 먹고.
남자 
그래요? 그럼 어디로 갈까요? 바다로 갑시다. 어느 바다로 갈까요? 동해의 푸른 물결, 넘실대는 높은 파도.
여자3 
서해의 검은 갯벌. 밀물과 썰물이 부딪치고. 우리 물에서 물장구 치며 놀아요.
남자 
남해는 어떨까요? 시원한 바람, 이순신 장군의 유적을 돌아보며 울돌목에서 목욕하다가
여자3 
거긴 물살이 쎄서 진도대교에 부딪쳐요. 제주도는 어때요? 산굼부리 분화구를 한번 내려갔다 올까요? 테디베어 박물관에서 인형이라도 끌어안고 사진도 찍고. 아님, 해수욕장, 아니 우리 소인국에서 우리만의 시를 써요. 우리가 걸리버가 되어서
남자 
좋습니다. 소인국에 떨어진 거인 남녀. 야 제목도 죽입니다. 제주도. 역시 여행은 제주도가 최곱니다. 일탈의 하루. 비행기에서 내려 오픈카를 타고 해변도로를 달리다. 야, 시원한 바람이 귓가를 스치며
여자3 
머플러가 바람에 날려 당신 귀를 간지럽히고
남자 
해변에 도착해 바나나 보트를 타며 물 속에 들락 날락
여자3 
그 높은 절벽에 부서지는 파도.
남자 
일출봉에서의 황홀한 일출
여자3 
빨갛게 물들어가는 바다의 석양
남자 
그리고 .소라 구이. 세발 낙지. 그리고 감귤과 갈치구이
여자3 
야!!! 난 싫다고!!! 먹기 싫다고!!!
남자 
아, 죄송. 죄송합니다. 바다는 역시 먹는 것이 많아서 아침에는 해장으로 짱뚱어탕, 점심에는 간단하게 해변에서 회 한 접시, 그리고 저녁에는 역시 제주도 똥돼지
여자3 
야 너 죽을래?
남자 
아, 죄송합니다. 제주도는 역시 먹을 것이 풍성한 땅이군요. 제주도를 가서는 먹지 않을 수 없지요. 그럼 우리 산으로 갑시다. 등산 어떻습니까? 요새는 더구나 먹을 것도 가져가지 못하게 하니까, 먹을 걱정 안하고 정말 좋겠네요. 난 정말 산을 좋아합니다. 아마 내가 올랐던 산만해도 한 백여 개 이상은 될걸요. 어느 산 가보셨어요?
여자3 
저는 원래 조금 허약해서 산을 많이 가보지는 못했어요. 그냥 간단하게 동네 뒷산 정도.
남자 
그래요. 그럼 제가 멋진 산을 하나 소개하죠.
여자3 
어딘데요?
남자 
남한의 금강이라는 월악산!
여자3 
아, 월악산이요? 지나가면서 많이 봤어요. 그 돌이 무척 많은 산이죠?
남자 
돌이라뇨? 무슨 말씀이세요? 저 돌 아닙니다.
여자3 
아니 그 돌 말고. 산에 있는 바윗돌이요.
남자 
아, 아, 그렇죠. 네 그렇습니다. 허허허 (갑자기 표정이 바뀌어) 아니예요. 싫어요. 난 월악산 싫어요.
여자3 
왜 그래요? 갑자기.
남자 
그 산은 너무 힘들어요. 내가 여태 산이란 산은 다 올라가봤는데 올라가다가 돌아가고 싶은 산은 딱 그 산 하나였어요.
여자3 
왜요? 너무 힘들어요?
남자 
힘든거야 어떤 산이든 다 마찬가지죠? 힘들지 않은 산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힘도 들지만 또 나름대로 맛이 있는 것이 산이거든요. 월악산도 그래요. 한참 올라가면서 굉장히 좋아요. 코스도 적당하게 험하고 바위 사이로 비집고 다니고. 여자하고 올라가기엔 정말 기가 막힌 산이죠. 그런데 한참 올라가다 보면 갑자기 저 아래로 내려가는 곳이 있어요. 한참. 아마 직선 거리로 한 1키로는 족히 될걸요. 그걸 내려가야 돼요.
여자3 
야, 좋겠네요. 그 아래에는 무슨 사슴이라도 뛰놀고 있나요?
남자 
사슴이요? 사슴이라도 있으면 뿔이라도 잘라서 녹용이라도 만들게요?
여자3 
그럼요?
남자 
그럼요 라뇨? 내려간다니까요. 내려 간다고요. 내려간다는 얘기는 즉, 내려가면 다시 올라와야 한다는 애기 아닙니까. 그걸 다시 올라가야 한다고요. 정말 땀 뻘뻘 흘리며 죽어라 고생하고 올라왔는데 다시 한참을 내려간다. 이거 정말 맥 빠지는 일입니다. 난 싫어요. 월악산 싫어요. 우리 차라리 무등산을 갑시다. 어때요?
여자3 
뭐 거기도 괜찮아요.
남자 
아녜요. 무등산 정말 좋아요. 우리가 가까이에 있어서 그 맛을 몰라서 그렇지 그만한 산 없습니다.
여자3 
사실 저도 무등산은 조금 올라가 봤어요?
남자 
그래요? 어디까지요?
여자3 
그게…
남자 
어디면 어떻습니까? 가깝고 코스도 좋고. 우리 무등산을 올라갑시다. 무등산은 높고 낮음이 없고, 어디서 보나 어머니의 품처럼 넉넉하고 푸짐한 산입니다. 산세도 완만하고 또 대부분 흙 산이며 천태만상의 암석들이 정상인 천왕봉을 중심으로 널려있어 정말로 웅장하고 아름다운 산입니다. 서석대, 입석대, 광석대가 있고 봄이면 철쭉, 여름의 산목련, 가을의 단풍과 설경의 변화가 많은 자연경관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기가막힌 산이죠. 어느 방향으로 갈까요? 토끼등, 바람재, 중봉, 천왕봉? 그리고 내려오다가 보리밥을 먹고 내려옵시다.
여자3 
(꽥 소리 지르며) 너 죽을래? 내가 무등산에서 올라갔던 것이 바로 보리밥 먹으로 갔었단 말이야. 왜 모든 얘기가 먹는 것에서 끝나냐고? 난 싫단 말이야. 먹는 것 더 이상 얘기하지 말라고. 제발 뭔가 다른 얘기를 하잔 말이야.
남자 
아 한번 더 죄송 그럼 우리 시원하게 강으로 갑시다. 강에서 민물매운탕이나 먹고.
여자3 
너 너 정말 죽을래? (남자를 밀어서 떨어뜨린다. 남자 비명을 지르며 떨어진다.)
남자 
(떨어지며) 그럼 너 혼자 잘 먹고 잘 살아라.
모두가 떨어지는 남자를 바라보다가
여자3 
개새끼. 떨어지면서도 먹는 소리만 하네. 야 우리 내려가자. 어디 가서 시원하게 소주나 한잔 마시자. 삽겹살이라도 구어 먹으면서. (자기의 말을 생각하며) 아, 싫다. 정말 싫다.
여자1 
괜찮아. 어치피 먹자고 사는 세상이니까, 아니 살자고 먹나? 하여간 먹는 것 빼면 시체인 세상이지.
여자2 
그래 맞아.
여자1 
그런데 누구 뛸 사람 없니? 누구 죽을 사람 없냐고? 나는 제일 앞에 서려니까 겁이 나는데. 누가 한번 뛴 다음에 얘기 좀 해줘.
여자2 
그러지 말고 우리 가위 바위 보를 하자.
여자3 
그래. 그거 좋다. 그래서 순서대로 뛰고 나서 그 다음에 다시 서로 얘기를 해 보자.
여자1 
이 바보야. 순서대로 뛰고 나면 다 죽었는데 그 다음에 무슨 얘길 하자는 거야?
여자2 
하여간 일단 가위 바위 보를 해보자. 그리고 그 다음에 얘기하자. 자 가위 바위 보.
셋이 모두 동일한 것을 낸다. 한 서너 번 똑같이.
여자3 
너희들 정말 왜 그러니? 좀 제대로 내란 말이야. 가위 바위 보도 못한단 말이니? 정말 바보들이잖아.
여자1 
그래. 그럼 내가 가위를 낼 테니까 너희들이 보를 내. 그럼 틀리게 되잖아.
여자2 
그럼 이긴 사람이 먼저 뛰는거다.
여자1 
아니지. 이긴 사람은 순서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있지.
여자3 
너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다 해라.
여자1 
그럼. 네가 다시 뛰어봐라. 조금 전에 용기 있게 뛰었잖아. 그래도 우리들 중에 곤돌라까지 내려갔다 온 사람은 너 밖에 없잖아.
여자3 
지랄하고 자빠졌네. 야, 죽으려고 뛰었는데 죽지도 못한 것이 자랑이냐? 무슨 훈장이냐? 무슨 좋은 일이라고 먼저 뛰냐? 그리고 너 그것도 모르냐? 한번 하려고 했던 일이 실패하면 그 다음에 그 일 하기가 정말 더 어려워 지는거야. 담배도 한번 끊었다 다시 피면 다시 끊기가 더 어려워지지. 난 싫다. 갑자기 무서워졌어. 그리고 조금 전에 저 아래까지 뛰는데 기분이 어땠는지 알아? 아, 그래 내가 얘기해 줄께. 조금 전 조 아래까지 뛸 때의 기분.
여자1 
어땠어? 황홀했어?
여자3 
황홀?
여자1 
그래. 목매달면 목이 조여오지만 곧 기분이 황홀해진다잖아.
여자3 
내가 목이라도 맸냐? (목을 조인다) 아, 황홀해.
여자2 
정말?
여자3 
정말은 무슨 정말. 목만 아프다. 그런데 내가 왜 이런 미친 짓을 하지? 나 미쳤니?
여자1 
응. 이제 알았어? 너 미쳤잖아. 아니 우리 모두 미쳤잖아. 그러니까 여기서 뛴다고 악쓰면서 뛰지도 못하고 있는 것 아니야.
여자2 
하긴 그래. 우리 모두 미쳤는가 보다. 그런데 미치면 사람들이 우리처럼 이런 곳에 올라와서 이럴까? 정말 죽는 것도 힘들어.
여자3 
야, 우리 이제 이런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어떻게 해결책을 좀 찾자.
여자2 
그래. 찾아야지. 그런데 문제는 죽기가 두렵다는 거지. 뒤에 남겨둔 것도 아쉽고. 한 발 앞으로냐 아니면 한 발 뒤로냐? 이것이 문제로다.
여자1 
그렇게 갈등하는 거 보니까 연극이 하나 생각난다. 너희들 라이어라는 연극 봤니? 거 왜 택시 운전수가 양쪽에 부인을 데리고 살고 있잖아. 그래서 수첩에는 언제는 이여자 또 언제는 저 여자. 이렇게 스케줄따라 살고 있잖아. 그 사람 얼마나 갈등하겠니? 이쪽에도 걸려서는 안되고 또 저쪽에도 걸려서는 안되고 정말 한시 한시를 갈등 속에서 살거야.
여자2 
그게 어떻게 가능하니? 난 생각도 못하겠다.
여자3 
내가 보기에 넌 생각 안해도 될 것 같은데.
여자2 
왜?
여자3 
소크라테스 왈 너 자신을 알라.
여자2 
뭐라고? 야, 내가 어때서? 이만하면 퀸카 아니야?
여자1 
사람은 착각 속에 산다.
여자2 
너희들 정말.
여자1 
정말
여자3 
어쩔건데?
여자2 
그러는 너희들은 뭐 좀 낫냐? 옛말에 남의 눈의 티는 보면서도 제 눈의 기둥은 보지 못한다고 했어.
여자3 
내 눈의 기둥?
여자1 
그래 니 눈에 기둥이 있는가 보다. 투명 기둥. 너 렌즈꼈냐?
여자2 
난 가련다. 너희들과 같이 있기 싫다.
여자3 
왜 그러니? 농담한 것 가지고. 그렇게 사람이 속이 좁으면 어떡해. 제발 가지말고 우리와 여기서 얘기나 나누자. 그래, 잘가.
여자
2 (여자3을 확 밀고 여자3과 똑 같은 자리로 뛰어 내린다.) 아…
여자들은 가만히 바라본다. 귀를 기울이고. 잠시 후
여자1 
무슨 소리 들리니?
여자3 아니.
여자1 
뭐 쿵이나 그런 소리가 들려야 되는거 아니야?
여자3 
그러게.
여자2 
(고개를 내밀고) 쿵은 무슨 쿵이야. 빨리 나 좀 꺼내줘. 이 곤도라에 낑겼단 말이야.
여자3 
(올려 주며) 야 오늘 정말 일진 사납다. 어떻게 둘이나 똑 같은 곳으로 떨어져서 둘 다 죽지도 못하니? (여자2를 올려 놓고 여자 1을 향해 다가가며) 이제 남은 것은 너 하나니까 니가 확실하게 뭔가를 보여 줘야겠다.
여자1 밀리지 않으려고 버티며 유쾌한 음악과 더불어 조명 서서히 아웃
제2막 새로운 시도
조명 밝아지면
여자2 
(턱을 감싸고 등장하며) 아우, 이빨이야. 무슨 이빨 치료하는데 120만원이나 드니? 빌어먹을 세상. 도대체 그놈의 의료보험은 뭐하는데 쓰고 내 이빨은 다 내 돈으로 치료한단 말이야? 매달 꼬박꼬박 의료보험비 내도 그 놈의 의료보험은 감기나 치료해 주지 도무지 쓸모가 없어. 도대체 어떤 놈이 이런 황당한 의료보험을 만들어 놓은 거야? 정말 짜증나서.
여자3 
(등장하며) 곧 죽을 년이 쓸데없는 일에 인상쓰지 마라. 야, 내가 소주 한잔 준비해왔으니까 우리 오늘 셋이 마시고 단체로 뛰어 내리자. 그런데 또 하나는 아직 안 온거냐? 출석을 제대로 해야지. 오늘은 이거 지각이잖아.
여자2 
그럼 내가 지금 흥분 안하게 됐냐? 차라리 그 놈의 의료보험 안드는게 낮지. 필요할 땐 써먹지도 못한는거.
여자3 
야, 그래도 나름대로 쓸데는 있어.
여자2 
어디에?
여자3 
치질. 난 치질 수술하느라 잘 써먹었거든.
여자2 
아유, 더러운 년. 여자가 무슨 치질이냐?
여자3 
야 성차별하지 마라. 여자는 치질 걸리면 안되냐? 남자도 유방암 걸리는 놈도 있다던데. 하여간 우리 한잔 하자. 거 왜 자살사이튼가 뭔가 이런걸 통해서 사람들이 같이 만나 함께 죽는다잖아. 우리도 함께 동반자살 하지 뭐.
여자 2 
그거 좋은 생각이다. 한잔하면 취할 테니까 더 좋겠지.
여자1 
(등장하며) 그래 맞아. 취하면 아무 것도 모르는거 아니야. 그럼 뛰어내려도 전혀 무섭지도 않을테고. 그거 좋은 생각이다. 야 빨리 한잔 하자고.
여자3 
천천히 마셔라. 술 증발하지 않는다. 아니, 우리 누가 빨리 마시나 내기할래?
여자2 
너 미쳤니? 그러다 완전히 가면 어쩌려고?
여자3 
뭐가 어때? 여기 누가 쳐다 볼 사람이라도 있냐? 여긴 너무 높아서 옆 건물에서는 보려고 해도 안보이고 여기 올라올 사람도 없고. 걱정 마라. 아무도 볼 사람 없다. 아마 우리가 모두 홀딱 벗고 쇼를 해도 아무도 모를걸. (춤을 추며 옷을 벗는다.)
여자1 
(말리며) 그 몸매에? 누가 있으면 괴롭겠지.
여자2 
아니, 내 얘기는 완전히 가면 일어서서 저기가 뛰지도 못할 것 아니냔 말이야. 그리고 취해서 오바이트라도 해봐. 김치 쪼가리, 콩나물, 고추가루, 밥풀떼기, 오뎅, 면발, 파… 아유 난 싫다. 천천히 맛을 음미하며 마시련다.
여자1 
미친년 넌 꼬냑이라도 마시냐? 맛을 음미하게? 이건 소주야 소주. 온 국민의 닝게르.
여자2 
아무리 보는 사람이 없어도 여자는 항상 행동을 조심해야 돼.
여자3 
미친년. 너 제정신이니? 너 여기 뭐하러 올라왔냐? 죽으러 올라온 년이 무슨 행동을 조심해?
여자2 
그래도 그게 아니다. 사람은 끝까지 지켜야 하는 자신과의 약속이 있는거야.
여자3 
무슨 약속?
여자2 
그냥 약속. 나는 이렇게 저렇게 살겠다 뭐 이런 약속. 그런 약속이 깨지면 삶이 허무해 지는거지.
여자3 
그래. 너 말 잘했다. 네가 여기 올라온 이유가 바로 그 약속이 깨져서 인생이 허무해져서 올라온 것 아니야?
여자2 
그래 맞아. 그래도 하나가 깨졌다고 해서 모든 걸 다 깨고 싶지는 않아. 나는 갈 때 가더라도 내 스스로를 지키면서 가고 싶어.
여자3 
그래라. 누가 말리겠냐? 그나 저나 얼른 한잔 마시고 나한테 넘기라고.
여자2 
그래. 한잔 하자. 위하여
여자3 
위하여. 그런데 뭘 위하여.
여자2 
인생을 위하여. 내가 시 한 수 읊을까?
여자1 
시? 좋지. 나 대학때 교수님이 시 많이 읽으라고 했어. 연기훈련에도 좋다고. 아, 갑자기 나도 시가 생각난다. 내가 먼저 읊을께. 보고 싶다 보고 싶다 이런 내가 미워질만큼 잊고 싶다 옳은 길이라고 너를 위해 떠나야만 한다고.
여자2 
잠깐 그거 시 맞아? 노래 가사 아니야?
여자1 
야, 노래 가사가 바로 시잖아. (노래한다) 미칠듯 사랑했던 기억이 추억들이 나를 잡고 있지만.
여자3 
그만. 여기 죽으러 왔지 노래 부르러 올라왔냐?
여자2 
나도 노래나 하나 불러야 겠다. “살다보면 그런거지 우우 말은 되지 닥쳐! 닥쳐!
여자3 
야 조용히 해. 뭘 닥치라는 거야?
여자1 
(거들어서) “말 달리자 말 달리자 닥쳐”
여자3 
저년들 한잔하더니 미쳤는가 보다. 미치려면 곱게 미칠 일이지.
여자1 
왜그래? 세상에 소리칠 때 이보다 좋은 노래가 어딨다구. 하하하 “닥쳐 닥쳐!”
여자3 
야, 미친년 상대하면 같이 미친년 된다.
여자2 
맞아. 우리집 가훈이 미친년 상대하지 말라야.
여자1 
그래 난 미쳤다. 인생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미치지 말라.
여자3 
아 찌랄.
여자1 
머지않아 기쁨의 날이 오리니. 현재는 언제나 슬프고 미치는 것.
여자2 
야, 그만해. 정말 미친 것 같잖아.
여자1 
나 정말 미쳤다니까.
여자2 
너 정말 나한테 맞아볼래?
남자 등장,
남자 
네. 반갑습니다. 성적이 매우 좋으시군요. 능력도 상당히 있으시고. 아주 훌륭한 분이시군요.
여자2 
감사합니다.
남자 
아마도 대략 훒어 보기에는 가장 성적이 좋지 않나 생각합니다. 좋은 결과가 있지 않겠습니까?
여자2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남자 
좋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기뻐하진 마십시오. 아직 결정된건 아니니까. 어쨌든 거쳐야 하는 단계들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회사는 많은 사람들이 공동으로 작업해서 결과를 만들어 내는 곳이니까 얼마나 사회에 대한 적응이 뛰어 난가도 살펴야 할 것이고. 우선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이전에 근무하던 회사가 매우 크고 오히려 우리 회사보다 더 건실한 말 그대로 대기업인데, 그것도 매우 좋은 자리에 계셨었군요. 그 자리를 마다하고 퇴직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는지요?
여자2
네. 그건 저의 이상과 그 회사의 방향이 서로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추구하는 것과 회사의 경영방침이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남자 
그래요? 조금 추상적이긴 하지만… 그러니까 절이 싫어서 떠난 중이시로군요.
여자2 
이를테면 그렇습니다.
남자 
좋습니다. 그럼 우리 회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여자2 
예. 현재는 업계에서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하고 있으나 연구에 대한 투자와 사원에 대한 복지정책 또는 사회적 이미지 등을 고려해 볼 때 머지않아 업계 정상을 달릴 수 있는 회사라 생각합니다.
남자 
아이고. 감사합니다. 우리 회사에 대해서 매우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계시는군요. 우리도 그렇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응시 번호가 13번인데. 13이라. 13일의 금요일 하면 뭐가 떠오르나요?
여자2 
네. 피가 떠오릅니다.
남자 
피? 영화가 아니고? 음 상상력이 아주 특별하시군요. 좋습니다. 그런 기발한 상상력이 우리에게는 필요하니까요. 그럼 피 하면 뭐가 떠오릅니까?
여자2 
네, 노무현이 떠오릅니다.
남자 
노무현? 대통령 말인가요?
여자2 
네.
남자 
왜요?
여자2 
탄핵으로 피볼뻔 했기 때문입니다.
남자 
허허허 정말 상상력이 뛰어 나군요. 그럼 노무현 하면?
여자2 
네 효자동 이발사가 떠오릅니다.
남자 
효자동 이발사? 그거 영화 맞죠?
여자2 
예 그렇습니다.
남자 
그래요? 어떤 내용입니까?
여자2 
네 엉겁결에 대머리인 대통령 머리를 깍아주게 된 어떤 이발사가 권력에 의하여 압박 받고 자식까지 불구가 되어 처절하게 짓눌려 살아가는 말 그대로 강력한 권력 아래에서 핍박 받으며 살아가는 힘없는 서민의 이야기입니다.
남자 
(약간 태도가 바뀌며) 그래요? 가치관이 무척 뚜렷한 것 같습니다.
여자2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남자 
그런데 너무 강하면 부러지기 쉽다는데.
여자2 
저도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남자 
좋습니다. 그렇다면 현 시대를 살아가는데 있어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 자신의 주장을 강조한다는 것이 조금은 사회생활하는데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을 해보지는 않았는지요? 그러니까 자신의 생각이 약간 뭐랄까 비뚤어져 있다고 본인 스스로 생각하지는 않는지요?
여자2 
그럴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저는 항상 솔직하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남자 
솔직하게? 네 좋습니다. 그러나 솔직하게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데 있어 조금 피곤한 일이죠.
여자2 
그렇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특히 허위와 위선, 그리고 술책과 편법이 지배적인 이 사회에서. 그러나 저는 저의 신념을 꺾으면서까지 이 사회에 적응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저의 삶을 지탱시켜주는 저의 최후의 자존심이니까요.
남자 
그래요? 그러니까 그런 자존심과 전에 다니던 회사와도 관련이 있겠군요.
여자2 
그렇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남자 
아, 그래요? 이제 좀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을 것 같군요. 그럼 한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의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여자2 
우리 나라의 문제요? 그건 너무 많아서 일일이 얘기하기 어렵습니다. 정말 끔직하게 살기 어려운 곳이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썩어 문드러져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을 지경이라 보입니다.
남자 
아,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고 계시는군요. 지금 경제적으로는 수출이 증대되고 있고 약간의 내수만 살아나면 모든 것이 다 잘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생각하는 것 같던데.
여자2 
겉으로만 보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소위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들과 그들을 뽑은 사람들 사이에 너무나 큰 갭이 있어서 각자 따로 놀고 있는 상황이고, 경제는 투명해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불법이 판치고 있고, 사회적으로는 우리의 모든 가치관이 흔들려 더 이상 이 땅에서 한국인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는 지경이고, 문화는 돈에 좌지우지되면서 정말 하류 싸구려 문화들만이 설치고 있다고 봅니다.
남자 
네. 네. 네. 네 잘 알겠습니다. 더 이상 얘기를 안들어봐도 충분히 이해가 될 것 같습니다. 곧 연락을 하도록하겠습니다.
남자 퇴장한다.
여자3 
(달려들며) 그래서 어떻게 됐어? 연락이 왔어?
여자2 
왔지. 편지가 한통 왔더군.
여자1 
합격?
여자2 
아니. 당연한 일이지.
여자3 
그래 넌 분명히 미쳤어. 그러니까 회사 면접에 가서 그렇게 얘기했지.
여자2 
나도 알아. 그래도 나는 한편으로는 기대하고 있었어. 그 회사는 나름대로 국내에서 가장 사원들 복지에 신경을 써 주는 회사였거든. 사원들에게 그렇게 신경을 써 주는 회사라면 내가 조금 생각이 과격하고 급진적일지라도 내 능력을 믿고 나에게 일을 주리라 생각했거든.
여자1 
그렇다고 과격파에게 자리를 그렇게 쉽게 내주지는 않지.
여자2 
맞아. 그렇지만 어쨌든 난 타협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아. 내가 이전에 일하던 직장에서도 회사가 어려우니까 직원들을 권고사직 시키겠다는 거야. 필요할 때는 불러다가 열심히 써먹고 자기 주머니에 돈 덜 들어온다고 자르겠다는 거지.
여자3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여자2 
뭘 어떻게 해? 반대했지. 사장실을 쫓아 올라가서 강하게 요구했지.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지금까지 그들이 축적해 놓은 기술이 있으니까 우리 모두가 조금씩 양보하면서 잠깐 이 위기만 극복해내면 될거다. 그런데 그런 말이 안 통하더라고.
여자1 
그래서 어떻게 됐어?
여자2 
아마 한 일주일간은 매일 사장과 면담을 했을거야. 설득하려고. 그런데 안돼. 결국 자기 주머니에 들어오는 돈이 이전과 동일해야 한다는 논리였지.
여자3 
그래서? 그래서 사표 던지고 나왔어?
여자2 
응. 사표 던지고 나왔지. 잡더구만. 하긴 나만큼 모든 걸 포기하고 회사에 매달려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정말 회사가 나의 모든 것이었지. 나는 회사와 결혼했던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래도 그들은 내가 어디 다른 회사에 기밀이라도 팔아먹으려 나오는 줄 알고 엄청나게 말리더구만. 그런데 내가 무슨 미련이 있겠어. 나의 믿음을 완전히 배신했는데. 그냥 뿌리치고 나왔지.
여자1 
조금 아쉬웠겠다.
여자2 
아쉬움도 있었지. 하지만 나의 생각과 현실이 맞지 않는데 거기에서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어? 나는 그냥 전기만 꽂으면 돌아가는 단순한 현대사회의 톱니바퀴가 되고 싶지는 않았어.
여자3 
그래. 이해는 간다만 하지만, 아무런 경제적 기반이 없으면 나이 들어서 어떻게 살려고?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하면 인생이 추해질텐데.
여자2 그래서 여기 올라온 것 아니니? 더 이상 나이 먹고 인생 추해지기 전에 내 스스로 결정을 내리자. 이게 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다. 아이 이제 시원하다. 모든 것 다 훌훌 털어버리니까 이제 마음 편하게 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너희들은?
여자3 
그래. 니 말도 이해는 간다. 하긴 나도 여기 올라오면서 여러 가지 생각 많이 했다. 어쩌면 내가 인생에 너무 큰 의미를 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냥 단순하게 생각하면서 남들과 똑같이 살면 되는데, 까짓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돌리면서 매일 똑같이 살아도 되는데. 나는 뭔가 변화를 갖고 싶어. 정말 아침 먹고 점심 먹고 저녁 먹고. 매일의 일상이 먹는 것으로 시작해 먹는 것으로 끝나는 것 같아서 너무 싫어. 이제 먹는 것만 봐도 아주 진저리가 쳐져. 아마도 나에게 필요한 것은 소위 일상탈출이라는 말이 아닐까 생각해. 매일의 생활에서 벗어나 무언가 새로움으로 내 자신을 충전할 수 있는 일. 그런데 그게 뭔지 모르겠어. 얼마 전에는 여행을 떠났었어. 그런데 돌아와도 결국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벗어날 수 없는 일상의 무료함이야. 매일이 똑 같은 일상의 무력감. 아침 먹고 점심 먹고 저녁 먹고. 나는 정말 여기에서 벗어나고 싶어.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고.
여자1 
나도 내 능력의 한계에 고민하고 있어. 사실 지금까지 나는 잘 해 왔거든. 내가 생각해도 잘 했지. 오디션보면 바로 바로 통과해서 중요한 역할 많이 맡았거든. 그런데 갑자기 잘 안되는 거야. 이유는 모르겠어. 슬럼프라고 아무리 내 자신을 위로해도 그게 잘 안돼. 그래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보려고 여기에 올라온 거야. 그런데 아직 결정을 못 내리겠어. 저 아래를 내려다 보면 너무 두려워. 공포가 온몸을 떨게 한다고. 그리고 아쉬워. 내가 지금까지 해 놓은 일이 있는데, 내가 지금까지 이루어 놓은 일이 있는데, 내가 여기에서 뛰어 내린다면 나라는 존재가 사라진다면.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일인데. 내가 할 줄 아는 유일한 일인데. 지금 단순하게 어려움에 걸렸다고 해서 내가 여기서 포기한다면, 뛰어 내리려고 서 있다가 뒤를 돌아보면 너무나 많은 아쉬움이 나를 붙잡아. 한발 나서면 끝인데 이제 끝을 낼까 하면 또 아쉬움이 나를 불러. 사실 내가 뛰지 못하는 것은 두려움보다는 아쉬움이 더 크기 때문인지도 몰라. 난 정말 최고가 되고 싶어. 또 최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그런데 그게 잘 안돼. 아마도 그동안 내가 모든 것을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몰라. 그냥 이렇게 하면 된다. 난 잘하고 있다는 자만감 때문에 지금 내가 이런 고통을 겪고 있는지도 몰라. 어쨌든 분명한 건 난 잘할 수 있다. 난 성공한다. 정말 최고의 배우가 되겠다. 연출선생 말마따나 <지금까지 제가 이 상을 탈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제 주변의 모든 친구들 그리고 저를 사랑하는 팬 여러분, 모두 감사합니다. 특히 오늘의 저를 이렇게 완숙한 배우로 만들어주신 연출가 장대식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런 얘기를 난 할 수 있다고 믿고 싶어.
여자2 
그래 우리 모두가 현실에 적응이 잘 안되는 사람들이겠지. 그냥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면 되는데 그게 잘 안되기 때문이겠지. 그냥 적응해서 살면 되는데 그게 잘 안되기 때문이겠지. 야, 술이나 한잔씩 더 하자. 그래
여자1 
술 취하니까 기분좋다.
여자2 
그래 너 아까보니까 노래 잘하더라. 노래 하나 해봐라.
여자3 
그래 그거 좋은 생각이다. 술도 취했고 보는 사람도 없으니까 우리 노래나 하나 신나게 하자.
여자1 
그래? 내 노래 아무데서나 들을 수 있는거 아닌데.
여자2 
너 그런 소리 자꾸하면 진짜 미친년처럼 보여. 그러니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빨리 노래나 하나 해봐.
여자1 
알았어. 한 곡 멋있게 부르지. 지금 우리에게 어울리는 분위기의 노래로.
여자 노래. 위하여
여자3 
오케이. 야 너 노래 잘한다. 자 우리의 남은 인생을 위하여 건배
여자들 
건배
여자3 
야, 그런데 우리 여기에서 만난지도 꽤 오래됐다. 그지?
여자2 
그래. 벌써 까마득한 시간이 흐른 것 같다.
여자1 
맞아. 아마도 죽는다는 생각을 하니까 우리가 모두 서로에게 솔직해 진 것이 우리를 보다 가깝게 만든 것 같다.
여자3 
그런데 우리 여긴 왜 와있니?
여자2 
죽으러
여자3 
왜 죽으려는데?
여자1 
왜 죽긴 왜 죽냐? 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잖아.
여자3 
그렇지 모두가 나름대로 이유가 있지. 그런데 정말 죽어야 하나?
여자2 
그럼 희망이 없는데 죽지 않고 뭘 하겠어?
여자1 
맞아 앞이 보이지 않을 때는 뭔가 혁신적이고 생각할 수 없는 어떤 일로 새로운 길을 열어야 돼.
여자3 
그래. 그거 명언이다. 혁신적이고 생각할 수 없는 어떤 일. 그런데 정말 자살이 그런 일일까?
여자1 
아쉬움은 누구에게나 있는거지. 나도 아쉽긴 해. 조금만 더 하면 바로 저 앞인 것 같은데. 그게 손에 안잡힌다는 거야.
여자2 
야 그런 약한 소리 하지 말아. 세상은 투쟁이야 싸우는 거라고. 나봐라. 면접 가서도 떳떳하게 내가 하고 싶은 얘기 다 하잖아. 이 썩은 세상에 대해서.
여자3 
그래서? 뭐가 달라졌어? 네가 무언가 얻은게 있냐고? 결국 실직자 아니니?
여자2 
그래 맞아. 나는 실직자야. 이 세상과 쉽게 타협하지 못하는 정의의 실직자. 그러나 나는 실직자라서 여기에 온게 아니야. 실직을 비관해서 자살 하려는 게 아니라고
여자1 
행동을 하자는 얘기겠지. 가만히 있는다고 바뀌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테니까. 또 가만히 있다고 우리에게 다가올 것은 아무 것도 없을 테니까.
여자2 
그래 내 얘기가 바로 그런 얘기야. 가만히 있으면 누가 가려운데 긁어주냐? 스스로 찾아서 얘기하고 바꾸려고 애써야지. 그래서 설사 지금 당장은 바뀌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언젠가는 바뀔 것 아니겠어? 나는 그게 우리의 인생이라고 생각해. 그래서 세상을 바꾸기 위해 행동을 하는 거지. 그런데 나에게는 세상이 너무 거대해. 세상에 비하면 내가 너무 초라하게 보여. 어쨌든 결국 산다는 것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거나 아니면 세상에 맞추어 스스로 바뀌거나, 우리는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겠지. 그리고 자신의 선택에 맞추어서 스스로 인생을 그려가면 된다고. 야 나한테 좋은 생각이 하나 있다. 우리 여기서 소리나 지르자. 저 밑에다 대고. 죽어라 소리 한번 질러보자. 야, 빌어먹을 이다.
여자1 
그래 개똥같다.
여자3 
더럽다. 나가 죽어라.
여자2 
나 죽으련다.
여자1 
나도
여자3 
우린 다 죽으러 여기 왔다.
여자2 
기다려라. 내가 뛰어 내릴 거다.
여자1 
나도 뛰어 내릴 거다.
여자3 
나도.
여자들 
(서로 소리를 막 지르다. 웃는다.)
여자3 
그래도 소리를 지르고 나니까 조금 후련해졌다.
여자2 
그렇지. 세상의 괴로운 인간들이여 옥상에서 소리를 질러라.
여자1 
그래 질러라.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러라.
여자2 
자 한잔, 위하여
여자들 
위하여
여자1 
자 이제 우리도 결판을 내자. 언제까지 이렇게 시간이나 죽이면서 헛소리만 하고 있을 수는 없잖아?
여자2 
그것도 인생을 살아가는 한 방법이다. 일종의 대리만족이라고나 할까? 세상을 바꿀 수도 없고 또 내가 바뀌기도 싫을 때 선택하는. 그러면서 말만 열심히 늘어 놓는 거지. 시간이나 죽이면서. 이게 아님 다른 무엇을 할 수 있겠어 ? 이것도 다 삶을 현명하게 살아가는 한 방법인 것을. 세상 사람들이여, 헛소리로 무료한 일상의 시간을 죽여라.
여자3 
이제 그만 끝내자. 모든 걸 끝내야지. 죽을 사람은 죽고 살 사람은 살고. 더 이상 이렇게 한심하게 말장난이나 하면서 시간을 죽일 수는 없잖아?
여자2 
그래. 세상이라는 거대한 톱니바퀴로 돌아가 말없이 돌아가는 하나의 톱니가 되든가 아니면 거기서 빠져 나가 이빨 빠진 동그라미가 되든가 그건 각자 알아서 할 일이다. 자, 나 먼저 간다.
여자2 끝으로 가 뛰려고 자세를 잡는다. 여자 1과 3은 쳐다보고 있고 음악 흐르며 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