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 그리고 그들은 달린다

A MUSICAL PLAY

김균형 작
김서경 곡

등장인물

연출 연출 담당 학생
기획 기획 담당 학생
극작 극작 담당 학생
대포 연기전공 학생
익호 연기전공 학생, 근애의 남자친구
근애 연기전공 학생, 익호의 여자친구
안무 안무 담당 학생
대배우 유명 남자 배우
대배우 유명 여자 배우
코러스 연극영화학과 학생들
(대본에 영문 알파벳으로 표기된 역할은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분배되는 역할을 의미한다.)

구성

1 프롤로그
2 연습
3 싸움
4 남이섬
5 갈등
6 10년 후

무대

어느 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연습실 및 기타 여러 장소

특기사항

이 대본은 연극영화학과에서 학생들이 작품 연습하는 것을 소재로 구성되었다. 뮤지컬로 제작하기 위하여 노래 춤 음악 등이 다양하게 구성되어야 한다. 특히 각 장면을 학생들이 연습하며 자율적으로 구성하는 방식을 취하기 때문에 노래 사이 사이에 들어가는 대사나 연기는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이런 장면은 연습을 진행하면서 애드립으로 삽입하기 바란다.

폰트칼라

대사 검은색
해설 지문 파랑색
노래 주황색

1 프롤로그

연출
좋다. 잘한다. 어제 너희들이 연구한 흔적이 보인다.

극작
잠깐! 잠깐! 잠깐!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안무 같은데? 완전 페임이네. 그렇지 않냐?

연출
그런가? 기획! 넌 어떻게 생각해?

기획
글쎄다. 내가 보기에도 썩 개운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안무
무슨 얘기에요? 이거 카피 아니에요!

기획
아닌 건 아닌 것 같은데…

극작
야! 우리 머리 아프게 창작하지 말고 그냥 외국 뮤지컬 짜깁기해서 갈라로 올리자. 내가 대본 작업할게.

연출
안돼! 공동창작하기로 했잖아.

기획
아니, 뭐 “하기로 했다”가 잘 안되면 “안 하기로 했다”로 바뀔 수도 있는 거지. 제발 우리 뭔가 좀 쉬운 걸로 하자. 쉬운 걸로. 야 머리 아프게 공동 창작은 무슨 공동창작이냐?

익호
야, 넌 쉽게 하려고 학교 다니냐? 비싼 등록금 내고 쉽게 하려고 학교 다니냐고?

극작
그래. 그래. 다 좋은데. 그냥 그리스 캣츠 오페라의 유령 이런 거 왕창 섞어서 간단하게 짜깁기로 가자.

익호
짜깁기 소리 그만해! 넌 왜 자꾸 열심히 하는 애들 기를 죽이는 거냐? 우리가 어제 머리 터지게 안무며 노래며 대사까지 창작한 거라고! (안무에게) 맞지?!

안무
예.

극작
하긴 모방은 창작의 어머니이긴 한데 이건 너무 베꼈어.

안무
선배 이거 베낀 거 아니에요. 내가 어제 저녁에 밤새면서 구상해 만들었는데. 너무 하네요. 단지 이것 저것 참조만 조금 했다고요.

기획
그래 니 말도 일리가 있기는 해. 세상에 순수한 창작이 어디 있겠냐? 이미 어딘가에서 적어도 한번 이상은 다 써 먹었겠지.

안무
그렇죠. 선배. 이거 카피 아니죠?

극작
그런데, 이건 카피야. 순서만 좀 틀리지 결국은 다 똑같잖아. 모든 동작이 어디선가 한 번은 본 동작들이잖아.

안무
선배…

기획
그래. 다 좋아. 다 좋다고. 그런데 이제 데드라인 일주일 밖에 안 남았다고요. 일 주일 뒤면 본격적으로 연습 들어 가야 된다고요. 스탭들은 디자인하고 제작 들어가야 한다고요. 나는 또 포스터 디자인에 홍보까지 할 일이 산더미라고요. 댁들이 빨리 결정해 줘야 나도 일 좀 제대로 시작할 거 아니냐고요? 또 지난 학기처럼 늦춰지면 안 된다고요.

대포
저 짜깁기이든 뭐든 어쨌든 빨리 결정을 내야 할 것 같은데요. 웬만하면 그냥 쉽게 짜깁기로.

익호
야! 조용히 해라! 짜깁기 소리 한 번 더 하면 죽는다!

극작
니들이 고생한 건 알겠는데.

연출
(극작에게) 우리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익호
에라 난 모르겠다. 니들이 다 알아서 해라! (뒤로 빠지고)

극작
저 자식…

연출
야! 익호야 익호야! 야, 안무! 이리와 봐.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안무 정리하고 있을 테니까 너희들은 일단 즉흥으로 각 장면 만들어 봐. 하여간 오늘 구성 다 끝내야 한다. 못 끝내면 집에 못 가. 자 각자 위치로!

2 연습

연출
자자, 연습 시작하자. 빨리 빨리 움직여라. 야야야야 똑바로 안 걸어 다닐래?

안무
연습 시작할 때 제대로 스트레칭 안 해서 다치는 녀석들 사정 안 봐준다.

익호
연습하자 연습. 자 시작해볼까? 자 이쪽으로 모이고. 오늘 신체훈련. 준비됐지?

연기팀
익호
알았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렇게만 연습하면 되는 거야!

A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몸으로는 제대로 되지 않아요.

익호
그러니까…

B
열심히 연습해서 몸이 습관이 되어야 한다는 거지. 라고 얘기하려고 했죠?

익호
그래. 그런데…

극작팀
C
선배. 사랑얘기는 너무 식상하지 않나요?

극작
그렇긴 한데. 학교 얘기 하면 페임 같다고 하고. 사람 얘기 아니면 캐츠 같다고 하고. 뭔가 특별한 게 없을까?

C
정말 모르겠어요 저도 나름 글 좀 쓴다는 소리 많이 들었는데 희곡은 소재 주제 장 막에 이르기까지 이게 쉬운 일이 아니네요. 시간도 많지 않은데 정말 큰일이에요.

극작
나도 정말 걱정이다 아휴

안무
10분간 휴식!

근애
아이, 배고파.

익호
아침 안 먹었어? 아침 먹고 다니라고 했잖아.

근애
그러려고 했는데 늦잠 잤어.

익호
내가 그럴 줄 알고 약간 싸왔지.

익호
뭔가 조금 더 먹을래?

근애

익호
뭐 먹을래?

근애
커피 앤 도넛!

익호
커피 앤 도넛? 그래 나가서 조금 먹고 오자.

기획
너 정말 앞으로 배우 안 할거야?

연출

기획
너 배우 했을 때 진짜 멋있었는데.

연출
난 연출하는 게 더 잘 맞는 거 같아. 배우의 경험이 도움도 되고 말이야.

기획
이제 시간도 많이 흘렀는데 부모님도 너 포기 하셨잖아.

연출
그때는 어쩔 수 없었지만 이제는 이게 더 좋아. 이렇게 작품을 만들어가는 것도 좋은 거 같아.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 받는 것도 좋지만…….

기획
그래도 내가 보기에는 너는 연출보다 배우의 모습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뭐 지금도 그렇게 나쁘진 않지만.

연출
그래? 너도 고생이 많다.

안무
(등장하며) 휴식 끝! 자 모두 들어와. 이봐 누가 지금 헛 생각하고 있는거야? 다들 모여. 죽음의 가랑이 찢는 시간이다. 준비들은 됐겠지?

기획
(카메라 들고 등장하며) 프로필 사진 찍을게요. 자 모두 모여 주세요.

기획
수고 하셨습니다. 오늘 찍은 사진은 메일로 각자에게 보내드리겠습니다.

연출
자 오늘 연습은 이쯤에서 끝내기로 하자.

안무
그럼 오늘은 간만에 연출 선배가 쏩니다.

모두
오케이, 콜!

3 싸움

근애
이제 그만들 해!

익호
그렇게 글을 잘 쓰시면 댁이 멋지게 창작해서 폼 나게 작품 만들면 되겠네. 왜 우리까지 괴롭히시냐고요 예 극작님?

극작
빈정대지마 새꺄. 그래 니 말대로 하면 돼. 하면 되는데, 그런데 같이 하기로 했잖아. 기왕 같이 하기로 했으면 끝까지 제대로 마무리 지어야 할 것 아니야! (한 대 친다. 익호 나동그라진다.)

근애
이제 그만해! 선배들이 이 모양인데 후배들이 뭘 보고 배우겠어?

연출
(기획과 등장하며 부드럽게) 그만해. 그만 하라고! 그만해!

익호
웬만하면 우리 이쯤에서 손들자. 그냥 짜깁기로 가자. 어떻게 보면 너나 나나 아니 우리 모두에게 그게 제일 좋은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안무
(후배들과 함께 등장하며) 선배.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익호
왜. 내가 뭐 못할 말 했냐? 능력 없으면 손 터는 거야.

연출
(화가 나서) 그만 해! 그만하라고! 나는 뭐 좋아서 허허거리는 것 같냐? 나도 너하고 작업하기 싫어. 정말 싫다고. 너처럼 이기적이고 잘난척하는 놈이랑 어떤 미친 놈이 같이 작업하고 싶겠냐? 그런데 싫어도 어쩌겠어? 응? 우리는 같은 팀이잖아.

기획
(앞으로 나서며) 야, 뭐 구경 났냐? 너희들은 연습 안 하고 여기에서 뭘 보고 있어? 빨리 연습해!

A
저 선배님. 죄송한데요. 뭘 해야 하죠?

연출
(익호에게) 그리고 너! 넌 빠져. 넌 잘렸어. 너처럼 지 생각만 하는 이기적인 놈은 우리에게 필요 없어.

익호
그래라. 나 없이 잘하겠다. 안무도 안돼. 화술도 안돼. 노래도 안 되는 놈들이 뭘 하겠다고 까부냐? 아무 것도 모르는 놈이 무슨 연출입네 하고 모가지에 힘만 넣으면 되냐? 까불지 마라.

연출
뭐라고?

극작
야, 싸움은 내가 시작했는데 왜 니들이 치고 받냐? 이상한 놈들이네. 그만해라. 후배들 앞에서 이게 무슨 창피냐?
기획 하여간 저 다혈질들. 그렇게 싸우고 싶어? 우리처럼 입으로 모든 걸 해결해야지. (후배들에게) 안 그러냐? 서희 장군을 봐라. 그 양반이 싸워서 이겼냐? 요 입으로 강동 6주를 돌려 받은 것 아니냐? (아무도 반응이 없자) 너희들은 뭐하고 있냐? 스트레칭 시작해라. 자! 음악 날리고.

근애
(익호를 옆으로 끌고 가며) 야, 너 너무 심하게 말했어.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가 있니?

익호
저 놈이 먼저 시작한 거야.

근애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그렇게 무시하면 되니? 그렇지 않아도 창작 안 된다면서 매일 스트레스 받는 애한테 그렇게 얘기하면 되겠어?

익호
아니야. 뭐 그러면서 크는 거야. 별 일 아니니까 너도 신경 꺼라.

근애
그러지 말고 니가 먼저 사과해.

익호
내가 왜? 내가 뭘 잘못했는데. 난 저 놈이 먼저 사과하기 전까지 사과 안 해.

근애
너 정말 그럴 거야? 그럼 너 정말 연습에서 빠질 거야?

익호
그래.

익호
야, 하늘 무너진다. 무슨 고민을 그렇게 하냐? 그만 해라. 내가 도와줄 테니까.

연출
자식. ..

익호
다 모여봐라. 우리 창작을 계속해서 진행하자. 빨리 아이디어 내고.

극작
그래. 빨리 아이디어들 내라. 너희들이 시작하면 뒤는 내가 정리할 테니까.

기획
야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로 무슨 창작이냐 창작은? 텃다 텃어. 난 산속에 들어가서 도나 닦을란다.

익호
산속?

대포
산속?

연출
(기획에게) 야 잔머리! 넌 또 무슨 잔 대가리 굴리는 거냐?

기획
창작을 위한 창작에 의한 창작으로 인한 공동창작을 위한 엠티! 어떠냐?

A
(좋아 날 뛰며) 야, 엠티 간단다. 엠티. 선배 우리 기왕이면 멀리가요. 필리핀이나 태국 어때요?

연출
(다시 기획에게) 뭔 소리야?

익호
뭔 소리는? 즐거운 엠티!

극작
그거 좋은 생각이다. 어디가 좋을까?

연출
글쎄. 난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B
선배 우리 (A를 가리키며) 쟤 말대로 태국이나 필리핀으로 갑시다.

C
(앞으로 나셔며) 박어! 박으란 말이다 새끼야.

C
죄송합니다. 형님. 제가 죽을 죄를 졌습니다.

대포
아이고 귀여운 놈.

기획
좋은 생각이지? 어디로 갈까? 춘천 어때?

연출
얘들아! 지금 놀 생각할 때가 아닌 것 같은데.

익호
춘천? 춘천 좋지. 내가 봄에 경춘선 열차를 한번 타 봤거든. 야, 그거 예술이더라. 그냥 온 산에 진달래 개나리가 노랗고 빨갛고 정말 환상이더라.

근애
(목소리가 변해서) 그래? 누구하고 탔었는데?

익호
누구하고? 글쎄 그게 누구였더라? 기억이 잘 안 나는데.

극작
야 야 그만해라. 누구하고 탔으면 어떠냐? 너 벌써부터 바가지냐? 옛날 애인하고 좀 탓을 수도 있는 거지 그게 뭐 어때서 그러냐? 하여간 여자들은 아주 이상해.

연출
(급하다) 내 말 좀 들어봐!

근애
(기가 죽어) 알았어. 니들이 그러니까 내가 무슨 의부증 있는 마누라 같다야. 그래 춘천으로 가자.

기획
그래! 좋은 곳이 떠올랐다. 남이섬!

익호
남이섬? 그래 그거 좋다. 남이섬으로 하자. 남이섬!

근애
정말 이상하네. 옛날 애인하고 남이섬에 갔었나 보지?

근애
남이섬으로 가자. 바람도 쐬고 여행 삼아서 갔다 오지 뭐.

연출
야, 지금 그런 한가한 때가 아닌 것 같은데.

D
(나서며) 각 팀 별로 시장 볼 분은 저와 함께 가시죠. 제가 확실하게 디스카운트 해 드릴게요. 일단 저녁 6시에 시장 팀은 정문 앞에서 모이도록 해 주세요.

E
저는 김치를 가져오겠습니다. 이번에 우리 아빠가 김치 공장을 내셨는데 홍보 차원에서 이번 엠티의 김치는 모두 제가 조달하겠습니다. 일단 드셔 보시고 맛이 있다 생각하시면 저에게 주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약간의 할인과 함께 최상의 서비스로 모시겠습니다.

F
그럼 저는 쌀을 가져 오겠습니다. 어차피 팔아 봤자 본전도 안되고 해서 일단 창고에 저장해 놓고 나중에 정 안되면 돼지에게나 먹이려고 했는데 이번에 제가 돼지 대신해서 팍 쏘도록…..

A
출발!

대포 여러분 남이섬에 도착했습니다. 모두 짐을 내리고 모여 주세요.

4 남이섬

극작
(기획에게) 이제 그만두자. 너같이 신념도 없는 녀석이랑은 더 이상 얘기하기 싫다. 넌 연극을 도대체 왜 하냐? 니가 왜 연극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연극을 사랑하니 이 나라 공연계가 어쩌니 저쩌니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냐 이 말이야?

연출
놔둬라. 연극이 재미 있다잖아. 저 녀석은 그거면 됐지. 그게 저 자식 연극 하는 낙인데 그걸 못하게 하면 잰 자살할거야. 공연에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핸드폰은 쓰레기 통에 버려 주시고요 잡담은… 에이 닥쳐주시고요 박수는 안쳐도 되니까 주무시거나 포커페이스 하면… 달려가서 면상을 아예.

기획
그래 맞다 맞아! 난 이게 좋다. 이 일이 왜 좋은지도 모르고 난 죽을 때까지 기획 할거다.

극작
니들은 모를 거다. 어머니 아버지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짓거리하고 있는 내 마음이 어떤지. 멍청한 니놈들이랑 연극하는 게 얼마나 답답한지.

대포
그만하세요 선배님. 너무 취하셨어요.

연출
너 대가리 박아 새꺄! 어디 지금 선배님들이 말씀 나누시는데.

기획
놔 둬라.

극작
나는 무대에 서있으면 보고 싶고 그리워하던 어머니 아버지 사랑하던 첫사랑까지 만날 수 있어서 좋아. 내가 무대에 있으면 이미 객석에는 타인이 아닌 친구들이 와 있는 거거든.

연출
헛소리 마세요. 그건 시적인 너의 몽상가적 발언이며 너무나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직접적이지 못한 필터링된 상념이다. 난 무대에 있으면 아무 것도 느낄 수 없어. 오직 검은 구멍과 내 몸뚱아리만 느껴져. 그리고 공연이 끝나면 난 그냥 비어 있는 것 같아. 그 기분이 마치 마약 같아.

대포
우리 이제 작품 얘기를 좀 해야 하지 않을까요? 내일은 돌아가야 하잖아요. 공연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는데.

연출
새끼 선배들 말씀하시는데. 박아!

A
(잠자면서 소리친다.) 야! 시끄러. 어떤 놈들이 잠도 못 자게 떠들고 있어? 조용히 하란 말이야. (일어서서 왔다 갔다 하며 몽유병처럼) 시끄럽다고. 누구야? 누가 이렇게 떠드는 거야? 너희들 빨리 안 자고 더 이상 시끄럽게 하면 (다시 쓰러져 잠든다.)

기획
(웃으며 흥분하려는 연출을 말리면서) 야야~ 됐어. 네가 참아 임마~극작 (느닷없이) 근데~ 우리 작품,,, 좋은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대포
뭔데요?

극작
죽이는 아이디어야. 아마 불후의 명작이 될 거다.

연출
뜸들이지 말고 빨리 좀 말해라.

극작
벌들의 축제가 있어. 그 축제에서 천상의 벌을 뽑는 거야. 그 벌에게는 하늘로 올라가서 새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거지,,, 이런 소재는 어때?


그거 어디서 많이 듣던 줄거리 같은데.

B
(잠자다 술 기운에 일어나며) 아 속 쓰려. 야 누가 물 좀 줘. 물. 물.

연출
야, 누가 재 물 좀 줘라.

B
물. 물을 달란 말이야. 아이고 속이야. (갑자기 일어나 웩 웩하며 뛰쳐 나간다.)

극작
그 자식 웃기는 놈이네. 그리고 너, (대포에게) 내가 한 얘기에 대해서 할 말 있어? 듣기는 뭘 들어 자슥아. 너 선배들 얘기하는데 자꾸 끼어들어서 대화 중단시킬래?

연출
야! 야! 야! 야! 야! 걔가 뭘 어쨌는데? 너 지금 뭐라고 했냐? 뭐 천상의 벌? 하늘로 가? 너 지금 우리 옛날에 공연했던 벌하고 캐츠하고 섞어서 무슨 고양이 벌 만들 일 있냐? 종족개량이냐? 오! 버러플라이 캐츠! 지랄하네.

극작
야야 끝까지 들어나 보라구. 벌이,,,

기획
됐어 그만해! (대포를 바라보며) 근데 넌 도대체 연극을 왜 하냐?

대포
저요? 저는요 연극을 하고 있으면요 제가요 그 뭐랄까…. 그냥 착해집니다.

연출
뭐? 착해진다?

대포
예. 그러니까 그게 저는 연극을 하면 착해지게 됩니다.

모두들
그래 착해진다? 좋다

근애
나 수영할래.

익호
난 수영 못하는데.

근애
그러지 말고 우리 같이 들어가자.

익호
아니야. 난 수영 못해. 그리고 너도 술 취했잖아. 물에 들어가면 안돼.

근애
괜찮아. 아무런 걱정하지 말라고.

익호
근애야.

근애
그만. 걱정 그만. 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내가 얼른 들어갔다 나올게.

익호
(…)

근애
(이미 물에 들어가서) 그래. 너도 들어와 봐. 물이 따뜻해.

익호
그런데 어디에 있니? 안 보인다. 이제 나와라.

근애
나 여기 있어.

익호
어디? 어두워서 잘 안보여. 어디 있는 거야? 어서 나와.

근애
괜찮아!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익호
근애야! 이제 그만 나와! 빨리 나와! 안 보여 너 어디 있는 거야? 너 어디 있는 거야? 장난 그만해.

근애

익호
근애야. 너 어디 있어? 안보이잖아. 얼른 나와.

근애

익호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어) 근애야. 근애야. 근애야.

익호
(숨을 헐떡이며 뛰어 들어와) 없어졌어! 사라졌어!

연출
(일어나며) 무슨 소리야?.

기획
(나머지도 모두 일어나며) 근애랑 데이트는 잘했냐?
익호
강가에서 근애가 근애가 없어졌어. 사라졌어. (거의 미쳐 있다.)

극작
얘 또 연기하고 있네.
익호 근애 살려내. 근애 살려내라고.

극작
야, 너 뭔 소리 하는 거야?

익호
근애야! 어딨어? 어디 간거냐구?

대포
정말 무슨 일이 생긴 거 아닐까요?

연출
야 무슨 일이야?

익호
근애가 강에 수영하러 간다고, 근데 없어. 없어졌어!

익호
동굴… 동굴이랑 이어진.. 강. 아니야 이건 아니야 그만!

익호
근애야. 근애야. 근애야. 정말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이렇게 무릎 꿇을게. 나를 용서해 줘. 나 때문에, 나 때문에 니가 죽었어. 난 견딜 수 없어. 안돼. 기다려. 내가 널 꺼내줄게. 기다려. 안돼. 그렇게 깊이 들어가면. 그러면 안돼. 난 수영을 못해. 난 널 구할 수 없어. 근애야. 근애야. 빨리 나와. 이리 나오라구. 제발. 근애야. 제발 이리 나와. 근애야. 근애야. 근애야. 이리 나와. (무너진다.) 친구들아.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근애가 생각나고 너희들도 더 이상 볼 수가 없어. 하지만, (일어서며) 이렇게 무너져 있으면서 나도, 너희들도 아파하는 것보다 차라리 나는 떠나겠다. 내가 보이지 않으면 내게도 또 너희들에게도 아픔이 덜하겠지. 그리고 우리 오늘의 아픔을 모두 가슴 속에 묻어 두자. 우리는 모두 근애 몫까지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고 정말 열심히 살자. 아프다고 주저 앉아 있지 말고 근애 몫까지 두 배 더 열심히 살자. 그리고 10년 후 다시 만나 부끄럽게 살지 않은 우리를 확인하자. 모두 안녕. (무대 뒤로 퇴장한다.)

A
그래 익호야! 10년 후 오늘. 우리 열심히 살자. 근애를 잊지 말고 근애의 몫까지 열심히 살자. 모든 것을 시간에 맡기고 다시 출발하자. 그리고 10년 후 오늘 꼭 다시 만나자 꼭.

연출
모두 수고들 했다. 잠깐 모여봐라.

연출
우리 나름대로 좋은 작품을 만들었다. 우리 모두가 엠티에서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면서, 우리 모두 가슴은 아프지만, 그리고 근애에게도 미안하고 또 익호에게도 … (익호를 찾으며) 익호는? 자 일단 공연 끝났으니까 무대부터 정리하자. (두리번거리며) 익호야? 익호야?

연출
(익호에게로 가며 다른 사람들에게) 자 빨리 무대 정리하자.

연출
다 울었냐?

익호

연출
이제 그만 울어라. 그리고 미안하다. 너에게도 또 근애에게도. 친구의 죽음을 소재로 작품을 만들어서.

익호
괜찮아. 좋은 작품 만들었으니까 됐어. 근애도 만족할거야.

연출
근애야. 미안해. 용서해.

익호
(또 운다)

연출
그만해라. 니 잘못도 아니잖아.

익호
잊을 수가 없어. 잊을 수가 없다고. 근애가 날 얼마나 찾았겠어? 숨도 못 쉬면서 날 얼마나 찾았겠냐고? 난 바보야. 난 정말 바보야. 사랑하는 사람이 물에 빠져 죽고 있는데 아무 것도 못했어. 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바보라고.

연출
그래 까짓 거. 울어라. 울어. 시원하게 울어 버려.

익호
그래. 정말 한 없이 울고 싶어.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그냥 울고 싶어. 근애야. 근애야.

5 갈등

A
(암전에서) 선배님! (조명 들어오고) 자 일단 다리를 먼저 찢자.

B
안돼. 기다려 기다리라고. 거기서 앞으로 나가면 안되잖아. 이 바보들아. 다시 돌아와.

D
바보 같은 놈. 너 정말 계속 그렇게 사람 핏대 세우게 만들 거야?

E
자 자, 다시 시작하자.

F
앞으로 뒤로 또 앞으로 그리고 또 앞으로. 야 앞으로 나가라니까. 넌 왜 매일 틀리는 거야?

G
(늦게 뛰어 들어오며) 죄송합니다.

H
정신 좀 차리자. 이제 얼마 안 남았어.

Y
그런데 도대체 왜 이번 학기에도 공동창작을 한다는 거야?

I
우리 학교 기본 프로그램이잖아요.

K
매 학기 한 편의 공동창작.

A
뭐 다른 방법이 없을까?

B
없긴 왜 없겠어요?

C
정 어려우면 정극팀으로 가세요.

C
하긴 있는 작품 하면 여러 가지가 편해지긴 해.

I
도대체 왜 자꾸 창작을 하려는 걸까?

J
그걸 아직 모른단 말이야?

K
그래. 몰라.

L
모르는 게 자랑입니다.

익호
(등장하며) 자, 연습 시작하자.

A 여기선 자전거 어때?
B No No 여기선 스케이트 보드지!
C 스케이트 보드? Good Idea!
A 앞으로 뒤로 좌로 우로 원 투 쓰리 원 투 쓰리 앞으로 뒤로 좌로 우로 원 투 쓰리 원 투 쓰리. 야 왜 자꾸 틀리냐?
B 죄송합니다.
C 자자 다시 한 번 제대로 해보자.

극작
공동창작이란 역시 어려워.

연출
그래. 우리 매 학기 공동창작 하나씩 하느라 고생 참 많이 하지. 그리고 매우 불행하게도 이번 학기에도 당연히 공동창작을 한 작품 해야 하고.

대포
공동창작을 해야죠. 지난 학기처럼 멋진 작품으로.

A
좋습니다. 선배님. 우리 이번에는 뭔가 쇼킹하고 상징적인 걸로 가면 어떨까요?

연출
쇼킹하고 상징적인 거? 상징적인 게 뭐가 있을까? 음~~~ 야 우리 지난 번에 선배들이 했던 “사랑은 소리 없이”를 쇼킹하고 상징적으로 다시 하는 건 어떨까?

대포
저,,, 우리 창작극 하기로 했잖아요,,,,

기획
(침묵을 깨려 헛기침하며) 흠흠,, 우리 이번에도 엠티나 가자.

극작
엠티?

A
좋습니다. 창작을 위한 창작에 의한 창작으로 인한 공동창작을 위한 엠티?

B
good idea!

C
어디로 갈까요?

연출
야, 너희들 왜 그러냐? 지금 너희들이 흥분할 때가 아니야.

D
제주도? 제주도가 어떻습니까?

익호
아니야. 우리 기왕 비행기 탈 거 좀 더 멀리까지 탑시다. 태국. 방콕

F
그래. 방콕. 우리 그리로 가자.

G
좋다. 태국으로.

연출
야야야야야야!!!

극작
우리 간단하게 가까운 데로 가자. 아니, 지난번처럼 남이섬으로 가는 건 어떨까?

익호
남이섬?

연출
그래 남이섬 우리 남이섬으로 다시 가자

기획
지난번에도 거기서 돌파구를 찾았잖아

익호
남이섬

대포
그래요 남이섬

익호
남이섬

익호
남이섬? 남이섬,,, 그래. 가자. 남이섬으로. 근애가 날 기다릴 거야. 근애야. 근애야. 기다려. 내가 널 꺼내줄게. 기다려. 안돼. 그렇게 깊이 들어가면. 그러면 안돼. 난 수영을 못해. 난 널 구할 수 없어. 근애야. 근애야. 빨리 나와. 이리 나오라구. 제발. 근애야. 제발 이리나와. 근애야. 근애야. 근애야.

6 10년 후

연출
(암전에서) 잠깐 주목! 교수님께서도 이번 학기에는 공동창작을 잠깐 쉬고 명작을 하나 공연하는 것에 동의하셨습니다. 그리고 테네시 윌리암스의 유리동물원을 추천하셨습니다. 1주일 뒤 오디션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월요일 저녁 7시 소극장. 모두 오디션 준비를 해 오기 바랍니다. 오디션은 자유연기 지정연기 특기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로라
(프로그램을 보며) “펜잔스의 해적들”에 출연한 당신이 여기 있어요!


그 오페레타에서 주역을 맡아 바리톤으로 노래했었지.

로라
정말 훌륭했어요!


뭘…

로라
아네요. 아네요. 정말 훌륭했어요.


내가 노래하는 걸 들었던가?

로라
네. 세 번 다!


그럴 리가…

로라
그랬대도요!


3회 공연을 다?

로라


왜?

연출
그렇지 약간 여유를 두고 ,,,

로라
난 … 프로그램에 사인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었어요. (프로그램을 내밀며)

연출
서두르지 말고.


그럼 왜 부탁하지 않았지?

로라
당신은 언제나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어요. 그래서 난 부탁할 기회가 없었어요.


부탁했더라면 당장…

로라
하지만

연출
한 번 더 포즈

로라
… 내 생각으론 나 같은 사람을…

연출
아주 진지하고 친절하게


당신 같은 사람이 어쨌다는 거지?

로라
글쎄…

연출

자. 과거 생각을 잠깐 해 봐.


그 시절에 난 여학생들에게 에워싸여 있었지.

로라
굉장히 인기가 좋았어요.


응, 그랬던 것 같아.

로라
그리고 누구에게든 친절했고.


그랬었지.

로라
모두들 당신을 좋아했어요.


당신도?

로라
네. 나도… 그랬어요.

연출
좋다. 용기를 얻어서.


좋아요. 좋아. 로라 그 프로그램을 이리 줘요.


자 여기 있어요. 늦었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로라
이건 대단한 … 선물이에요.


이제 와서 내 사인이 무슨 값어치가 있을라고. 그렇지만 언젠가는…

연출
한 번 더 생각하면서 자기 자신에 대한 다짐.


아마… 값이 붙을 날이 올지도 모르지.

연출
오케이. 암전!!

연출
조명 주세요! 자 배우들 무대로 잠깐 나와 주십시오.

연출
이제 공연 3일 남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하는 거 보니까 별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제가 10년 전 대학에서 이 작품을 했을 때도 지금보다는 좋았던 것 같습니다. 우리 프로로서의 자존심과 명예를 가지고 조금 더 역할을 충실하게 정리하고 다시 한번 돌겠습니다. 조명실 준비 됐습니까?

조명실
예.

연출
좋습니다. 다시 한 번 가도록 하겠습니다.

로라
(프로그램을 보며) “펜잔스의 해적들”에 출연한 당신이 여기 있어요!


그 오페레타에서 주역을 맡아 바리톤으로 노래했었지.

로라
정말 훌륭했어요!


뭘…

로라
아네요. 아네요. 정말 훌륭했어요.


내가 노래하는 걸 들었던가?

로라
네. 세 번 다!


그럴 리가…

로라
그랬대도요!


3회 공연을 다?

로라


왜?

로라
난 … 프로그램에 사인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었어요. (프로그램을 내밀며)


그럼 왜 부탁하지 않았지?

로라
당신은 언제나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어요. 그래서 난 부탁할 기회가 없었어요.


부탁했더라면 당장…

로라
하지만 … 내 생각으론 나 같은 사람을…


당신 같은 사람이 어쨌다는 거지?

로라
글쎄…


그 시절에 난 여학생들에게 에워싸여 있었지.

대배우
(연기를 하다 말고) 조명이 지금 꺼지면 안 되지. 야 연출 이거 어떻게 되는 거야? 여기 조명 꺼지는 거 맞아? (조명 들어오고) 조명, 너 연극 망치려고 그래? 초짜들하고 연극 못하겠네. 10분간 휴식. 야 담배 가져와.

연출
(애써 웃으며) 예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런데요. 선배님 거기선 좀 더 긴장감을 드러내 줘야 할 것 같은데요.

대배우
뭐라고? 너 지금 나한테 뭐라고 했냐? 이거 아까부터 지 10년 전 대학 타령이나 하더니. 야 이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연출 새끼야! 니가 연극을 알아? 이제 연출 몇 편 했다고 연기 생활 30년 한 나한테 연기 가르치려고 들어? 이 건방진 새끼야!.나 캐스팅에서 빼! 어디 후배 무서워서 연극 하겠냐?

연출
저 선배님.

대배우
시끄러 자식아. 니가 뭐 대단히 출세라도 한 줄 아냐? 쥐 뿔도 모르는 놈이 연극에 대해서 왈가왈부하지 말란 말이야. 연출이면 다냐? 선배도 몰라보는 놈이. 선배가 연기를 하면 후배는 그냥 조용히 따라오면 되는 거야. 지금까지 그렇게 해서 잘 됐는데 시퍼런 놈이 갑자기 나타나서 뭘 어쩌겠다고 그래? 그 따위로 연극하려면 때려 쳐.

연출
(대배우를 밀어내며) 그래! 안 한다 안 해! 집어 치워라. 그 잘난 연극 너나 잘해 봐라! 잘해 봐! 니들이 그 따위로 연극하니까 이 나라 공연 예술이 개판인 거야! 잘 가거라! 여기가 아니면 내가 갈 데가 없는 줄 아냐? 가! 가! 사라져!

극작
(기획과 함께 보고 있다가 술 한 잔 건네며) 그래서 때려 치웠냐?

연출
다 들어 놓고선 또 왜 묻냐? 정말 더러워서 못해 먹겠다.

기획
그런 일 한 두 번 겪냐? 넌 벌써 10년이나 현장에 있으면서도 어떻게 그렇게 툭하면 싸워대냐? 성질 좀 죽여라. 성질 좀.

연출
다 때려 치고 시골 가서 농사나 짓던지.

극작
야 농사는 아무나 짓냐? 그리고 너 가만히 보니까 싸움만 하면 꼭 때려 치고 농사나 짓는다고 노래를 부르는데. 내가 보기엔 그 선배가 얼마나 문젠지 몰라도 하여간 너도 만만치 않아.

연출
뭐라고? 내가 뭘 어쨌는데?

극작
네가 불 껐다며…?

연출
야, 그럼 화나는데 불 안 끄냐?

극작
그래. 꺼라.

연출
그래 꺼야 한다고.

극작
그렇지 꺼야지.

기획
맞다. 꺼야지.

연출
그래. 꺼야 한다고. 꺼야지. 꺼야지…. 에이 씨. 불도 맘대로 못 끄고 … (일어서서 소리 한 번 지른다) 야!!! 더럽다!!! 정말 더러워!!!!

기획
사는 게 다 그런 거다.

극작
야, 그나저나 설마 우리만 온 거야?

기획
그래. 애들 모두 다 작업 중이란다. 모두 바쁘다니까 얼마나 좋냐

연출
이 새끼들, 정말 짜증나네. 누군 한가해서 왔나.

극작
야, 참으라고. 이제 걔들도 다 성인이고 애 아빠도 있어. 네가 새끼 자식 찾을 때가 아니라고.

연출
그래도 선배가 이렇게 와 있는데

극작
너도 선배 내 쫓았잖아.

기획
그러게 말이다. 그리고 너 아직도 대학인줄 아니? 그러니까 네가 자꾸 부딪치는 거야 임마. 그래 선배한테 10년 전 대학 얘기를 꺼내면 누가 그 말 예쁘게 듣겠냐?

연출
아니, 그렇게 못했다니까. 정말 못했다고. 옛날 우리가 만들 때보다도 훨씬 못했다고.

극작
야, 그 선배가 그래도 능력이 있으니까 오늘날 그만큼 하고 있는 거 아니야? 그런데 네가 그걸 다 무시하면 누가 네 얘길 듣겠냐고?

연출
그럼, 못하고, 내 마음에도 안 드는데, 내가 원하는 대로 해 달라고도 말도 못한단 말이야? 연출이?

기획
잊어라. 잊을 일은 잊어.

극작
그래, 다 잊어버리고 술이나 한 잔 하자.

연출
그래. 제대로 적응도 못하고 고집만 부리는 이 한심한 연출가를 위하여! (건배 한잔)

극.기
위하여!

연출
그나저나 익호 소식은 여전히 모르지.

기획
응 적어도 우리 쪽에는 없는 것 같아. 있다면 이렇게 완전불통일 수가 없지.

극작
그 자식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기획
글쎄다. 10년이나 지났는데. 연락 한 번 없고.

연출
(주저 앉으며) 아마도 오늘의 약속도 잊어버린 모양이다.

기획
무심한 놈.

연출
어쨌든 연극을 안 해서 다행이다. 나처럼 더러운 꼴 안 볼테니까.

기획
더럽긴 어느 일이나 다 마찬가지야.

극작
그래. 우리가 졸업한 후 10년 동안 참 더러운 꼴 많이 봤지.

연출
야~ 우리 딱 십 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기획
10년 전? 그 때 정말 좋았지. 오기도 있었고 용기도 있었고 힘도 있었고 술 한 잔에 모든 걸 다 가질 수 있는 꿈도 있었잖아.

연출
꿈…

연출
야, 참 인생 힘들지. 자꾸 내 스스로 성공할 수 있다고 다잡고 있는데도 힘이 들기는 힘이 든다. 두렵기도 하고.

극작
그래. 뭐랄까 작은 연못에서 시작해서 우리는 지금 큰 바다에 나와 있는 거지. 파도도 거세고 의지할 곳도 없고 이걸 헤치고 나가는 것이 쉽지 않지.

연출
우리 언제까지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할까? 졸업하고 벌써 몇 년인데, 아무 것도 이룬 것도 없고 후배들 보기도 또 부모님 보기도 미안하고 부끄럽고. 갑자기 그냥 서럽다. 다른 친구들은 다 뭔가를 하면서 잘 사는 것 같은데, 나만 아직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것 같고.

극작
너만 그렇게 느끼는 거 아니다. 모두가 그러면서 앞을 보고 사는 거지.

기획
익호 그 놈은 어디에서 뭘 하고 지낼까?

극작
(나지막이 소리를 지른다.) 익호야. 잘 지내고 있지? 우린 니가 참 보고 싶다. 익호야!

연출
(조금 더 크게) 그리고 너무 미안하다. 근애야. 너도 잘 있지? 너도 여기 어디 있지? 너한테도 너무 미안하다. 보고 싶다 근애야.

기획
근애야. 미안해. 그때 너도 함께 돌아갔어야 하는데. 정말 미안해. .

극작
근애야…

연출
옛날 생각 난다.

극작
그래. 철 없던 시절이었지. 그때 조금 더 대본을 잘 썼더라면.

기획
그때 조금 더 홍보를 잘했더라면

연출
그때 조금 더 멋지게 연출했더라면.

극작
야, 생각나냐? 난 그날 여기에서 있었던 일들이 꿈이 아닐까 싶어. 그 끔찍했던 기억이 지금은 왜 이렇게 아련한 추억으로 기억되는지 모르겠어.

연출
그날 이후 우리 모두 부쩍 컸지. 그리고 그 자식이 떠나고 나선 뭔가 모를 쓸쓸함과 이 일을 평생 해야겠다는 필이 팍 온 거지. 그리고 뒤도 안 돌아보고 뭔가를 찾기 위해 아니 잊어버리기 위해 쉬지 않고 달려왔던 것 같애.

기획
결국 뭔가를 잊어버리고 다시 찾고 다시 잊어버리고

극작
정말 아쉽다. 다시 한 번 그 때로 돌아간다면 정말 열심히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기획
니 말이 맞다.

연출
그래도 우리 그 때 참 열심히 했어.

극작
맞아. 새벽에 연습 끝나고 집에 안 들어가고 술 마시러 다니기도 하고

기획
그러게 그렇게 매일 연습 늦게 끝나도 꼭 술은 마시러 갔었단 말이야

연출
야, 기억 나나? 그 때 한 번 새벽까지 술 마시고 술 냄새 풍기며 아침에 학교 나갔다가 교수님한테 죽도록 혼났던 거.

기획
그 후로 며칠 간 교수님 얼굴도 못 쳐다봤잖아.

극작
서로 싸우기도 하고 힘도 들었지만 정말 순수하게 열심히 했었지. 지금처럼 이것 저것 재지도 않고 그냥 오로지 열심히 하던 시절.

연출 맞아. 바로 그 초심이 필요해. 여러 가지 생각하지 않고 그냥 하나의 목표만 세우고 좌우 재지 않고 죽어라 덤벼들던 그 초심. 그 덕분에 우리는 어렵지만 그걸 모두 이겨내고 지금 여기까지 올 수 있었지.

기획
(짐을 챙기며) 이제 그만 돌아가자.

극작
그래. (연출에게) 앞으로는 불 끄지 마라.

연출
야, 그 문제는 나도 할 얘기가 많다고. 내 잘못이 아니라니까

연출
아니….

대배우
아니. 너 여기 웬일이냐?

연출
선배님은 웬일이십니까?

대배우
나? 뭐 그냥 바람이나 쐬러 나왔다.

극.기
안녕하세요?

대배우
어, 너희들 서로 친구냐?

극.기
예.

대배우
야, 얘 성질 한 번 끝내주더라.

극작
죄송합니다. 저희가 잘 타이르는 중입니다.

기획
앞으로는 그러지 않을 겁니다.

대배우
(연출에게 다가가 손을 잡고) 후배! 고마워!

모두

대배우
나 네 덕분에 생각 많이 했다. 내가 오늘 이 자리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나 자신에 대한 반성을 했었던가, 또 내가 지금도 그런 반성들을 계속하고 있는가… 내게 이런 기회를 줘서 정말 고맙다.

연출

대배우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 여기 자주 왔었다. 나 자신을 돌아보고 잘못된 점 고치고 반성하고 더 열심히 잘 하기 위해서. 그 땐 참 생각하고 반성할게 많더라. 그런데 어느 순간 인기를 얻게 되고 사람들 입에도 오르내리게 되면서 바빠지다 보니까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냥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기계처럼 살게 되더라. 물론 내게 싫은 소리 하는 사람도 없어지게 되고 자연스럽게 나는 언제나 옳은 사람이 되었지. 그렇게 나는 점점 내 왕국을 쌓고 그 속에서 살아온 거지. 그런데 네가 오늘 나를 깨우쳐줬어. 정말 사람들 얘기하듯이 초심으로 돌아가서 다시 열심히 잘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 줬어. 초심! 그거 내가 현재 어디에 서 있나를 비춰주는 거울이지. 후배. 고맙다. 우리 앞으로 연습 잘해서 좋은 작품 만들자.

연출
죄송합니다. 선배님.

대배우
아니다. 정말, 고맙다.

기획
선배님. 여기 저희들과 한 잔 하시죠.

대배우
그래도 될까?

극작
환영합니다. 선배님.

대배우
그러자고. 자 가득 채워.

연출
좋습니다. 가득 채우겠습니다.

연출
선배님. 저희들 오늘 여기에서 약속이 있었습니다. 10년 전에 한 약속이었죠. 선배님, 저도 앞으로 이곳에 더 자주 와야 할 것 같습니다. 반성할 일이 점점 많아질 것 같습니다.

대배우
그러자. 자주 오자. 남이섬으로. 아니 새 출발할 수 있는 반성섬으로.

연출
저도 내일부터 새로운 마음으로, 아니 언제나 초심으로 저 자신을 채워 나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