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 오늘

A MUSICAL PLAY

작 김균형

등장인물

김대리
남대리
코러스
김대리를 제외한 모든 역할은 작품에 등장하는 이러저러한 역할들을 담당한다.

무대

김대리가 살아가는 과정의 여러 곳
길거리
버스 안
사무실
카페
사장실
외 여러 곳
무대는 조립식으로 한다. 한 장면에서 다른 장면으로 넘어갈 때 코러스가 무대를 밀면서 들어와 장면이 바뀌는 방법으로.

폰트칼라

대사 검은색
지문 해설 파란색
노래 주황색

PLAY

#1 일!

면접관
취미가 뭔가요?

1
음악감상입니다.

면접관
영어로 자기 소개 한 번 해보시겠어요?

2
Yes. Of course! I introduce myself.

면접관
남들에게 말하면 놀랄만한 당신만의 비밀이 뭐가 있나요?

3
예? 아, 저 그러니까 저는 손가락이 합쳐서 12개가 아닙니다.

면접관
우리 회사의 장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요?

4
이 회사의 장점은 무엇보다 투명한 경영이라고 봅니다.

면접관
자신의 장점은 어떤 거라고 생각해요?

5
저는 추진력이 있습니다.

면접관
인생의 목표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6
인생의 목표란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면접관
행복이란 뭐라고 생각하나요?

7
예 행복이란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며 웃으며 살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2 출근

김대리
할머니 괜찮으세요? 일어나세요. 제가 부축해 드릴게요.

할머니
고마워요. 처녀 마음이 곱네.

김대리
아니에요. 누구나 다 그렇죠.

할머니
그런데 처녀, 왜 그렇게 얼굴이 밝지 않아? 너무 무표정해. 웃고 살아야지. 나만큼 살다 보면 웃는 게 정말 필요하다는 걸 느끼게 될 거야. 웃으면서 살아야 행복도 찾아오는 거야.

김대리
그래요? 할머니 알겠습니다. 잊지 않을게요. 전 시간이 없어서 먼저 갈 테니까 조심해서 가세요. (퇴장)

할머니
고마워 처녀. 내 처녀 웃게 해 줄게.

#3 사무실

1
어제 비 많이 오데.

2
맞아. 난 자다가 빗소리에 놀라 잠을 깼다니까. 더구나 우리 아파트는 1층인데. 지난 번에 한 번 우리 동네가 다 침수됐었거든. 다행히 우리 아파트는 지하 주차장만 잠기고 말았지만.

3
진짜 어제 비도 무서웠어.

4
그나저나 저 경리과의 최미소씨 있잖아. 결혼한다던데.

5
정말. 남자는? 뭐하는 사람이래?

6
아마 대학 때부터 사귀던 사람인 모양이야.

7
대학 때부터? 대단하네. 어떻게 그 오랜 시간을 견뎌왔을까? 나는 만나면 매일 싸우는데.

8
왜? 뭐가 안 맞아?

9
안 맞는 것야 많지. 아니 하나부터 열까지 정말 뭔가 맞지 않아.

1
어떻게 안 맞는데.

2
예를 들면, 점심을 먹잖아. 그런데 여태 한 번도 의견이 일치한 적이 없어. 내가 짬뽕 먹고 싶을 때 무슨 스파게티 먹자고 하고, 또 놀러가고 싶을 때 피곤하니까 오늘은 그냥 어디 카페에서 좀 쉬자고 하고, 옷을 고를 때도 내가 노란색 고르면 빨간색이 좋다고 하고, 극장에 가자고 하면 쇼핑가자고 하고… 뭔가 일치하는 게 전혀 없어.

3
그럼 어떻게 해? 섹스는?

4
그것도 별로 시원찮아.

5
그럼 안되지. 그렇게 서로 다르면 곤란할텐데.

6
그래서 지금 어떻게 할까 생각 중이야. 누구는 대학 때부터 만난 남자랑 결혼한다는데 나는 이게 뭐니. 이제 애인도 없어지면 주말에 나는 뭐하지?

7
나는 벌써 6개월째 솔로야.

8
참, 우리 김부장님 이사로 승진한다는 얘기 들었어?

9
진짜? 나 더 이상 이 회사 안다닐래.

1
그러게. 그 사람 이사되면 안 되는데. 윗사람 눈치만 보고 아래 사람만 달달 볶는 정말 승진하면 안되는 사람인데. 우리 회사를 위해서도. 내가 사장님한테 가서 얘기라도 해야겠다.

2
진짜?

3
진짜는 무슨 진짜! 내가 가서 얘기하면 나만 찍히지. 사장이 미쳤어? 내 얘길 듣게.

4
앞으로 회사 생활 더 피곤해 지겠네. 걱정이네 진짜.

5
(김대리에게) 그런데 자기는 왜 아무 얘기 없어? 뭐 무슨 문제 있어?

김대리
응? 아니. 문제는 무슨. 그냥 피곤해서 그렇지.

6
(시계를 보며) 어, 벌써 시간이, 이제 오늘도 슬슬 시작해 볼까?

과장
(김대리에게) 김대리!

김대리
예.

과장
이거 자네가 작성한 보고서 맞아?

김대리
네. 그렇습니다만.

과장
그렇습니다만?

김대리
네.

과장
내용이 뭐야?

김대리
그러니까

과장
도대체 뭐야? 뭐냐고? 무슨 보고서가 내용이 없어? 응? 이게 뭘 쓴 거야?\

김대리
시장분석에 대해서…

과장
무슨 시장 분석? 여기에 써 있는 것 못하는 사람 있어? 그냥 일반적인 얘기만 정리한 것 아니야?

김대리
죄송합니다.

과장
지난 번에도 그러지 않았어?

김대리
죄송합니다.

과장
제대로 살펴보지도 못하고 결제 들어간 내가 문제지. 그리고 자네는 도대체 할 줄 아는게 뭔가? 응? 보고서 하나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이대리를 보며) 이대리!

이대리
예.

과장
이거 자네가 정리 좀 해. 이 친구는 도대체 믿을 수가 없어. 거기 서 있지 말고 가서 일해.

김대리
예.

과장
(다시 등장하며, 아까보다 더 화가 나 있다) 김대리!

김대리
예.

과장
자네가 결국 오늘 히트를 치는구만.

김대리
예?

과장
(서류를 내밀며) 이것도 자네가 작성한 거지?

김대리
예. 그런데요.

과장
그런데요? 자네 지금 꿈꿔? 이게 무슨 내용이야? 일하기 싫어? 일하기 싫으면 나가면 돼 일할 사람은 많으니까

김대리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좀 더 집중하겠습니다.

과장
좀 집중해서 되겠어? 아무래도 자네는 믿을 수가 없어. 일단 시장이나 나가서 시장 조사나 하고 와. 우리 제품과 경쟁사 제품이 어떻게 판매되고 있고 각각의 장단점은 무언지 파악해 가지고 와.

김대리
예.

과장
똑바로 해 가지고 와. 이거 잘못하면 옷 벗을 줄 알아.

김대리
예.

과장
빨리 나가.

김대리

#4 길거리

할머니
아침의 고마움에 대한 보답이야.

김대리
할머니! 할머니! 이거 정말 저에게 주시는 건가요? 이런 세상에. 내가 복권에 당첨되다니. 그것도 저게 얼마야? 일 십 백 천 만 십만 백만 천만 억 십억 백억. 백이십억?

김대리
저기요. 저기요. 나 좀 꼬집어 주실래요? 어서요. 저 미친년처럼 보이죠? 맞아요. 나 미쳤어요. 나는 미쳤어요.

김대리
야! 난 이제 부자다! 난 이제 일하지 않는다! 아침에 인상쓰며 일어나 졸린 눈으로 무표정하게 버스타고 전철타고 출근하지 않는다! 푹신한 침대에서 하인이 가져다주는 따뜻한 밥 먹으며 내가 자고 싶은만큼 자고 먹고 싶은 만큼 먹고 놀고 싶은 만큼 놀고 일하고 싶은 만큼만 일할 거다. 난 뭐든지 할 수 있다. 이제 난 부자다.

김대리
아니 남대리님? (다가가서) 남대리님!

남대리
어? 아니 김대리? 웬일이야. 이런 시간에 여기에서.

김대리
남대리님 보고 싶어서 기다리고 있었죠.

남대리
나를? 왜?

김대리
사실 나 그 동안 남대리님을 무척 좋아했어요. 언제 한 번 같이 밥이라도 먹고 싶었는데

남대리
그래? 고맙네.

김대리
남대리님. 애인 없으시죠? 우리 애인해요.

남대리
애인?

김대리
네. 좋죠? (팔짱을 낀다)

남대리
저기… (팔짱을 살짝 빼며) 나 사실 애인 있는데.

김대리

남대리
그럼 나 먼저 갈게.

김대리
(떠나는 뒤에 대고) 남대리님. 우리 같이 커피나 한 잔 할래요?

남대리
커피?

김대리
네. 커피! 아주 맛있는 커피!

남대리
커피, 뭐 그야 어려울 것 없지. 그러자고. 그런데 나 얼른 다시 들어가야 돼. 시장에서 한 가지만 확인하겠다고 하고 나왔거든.

김대리
그깟 회사가 뭐 그렇게 중요해요. 회사 짤리면 내가 먹여 살릴게요.

남대리
뭐…? 허허허허허…

김대리
(팔짱을 끼며) 정말이에요. 자, 가죠.

남대리
(팔짱을 빼려고 하며) 아니, 저 김대리.

김대리
왜? 싫으세요?

남대리
아니 그러니까 그게 저 그 뭐냐 그 저 싫어.

김대리
하여간… 갑시다. 커피 한 잔 하러.

#5 까페

남대리
저기. 김대리, 그러니까 그게 이게 있잖아 그 저

김대리
그래. 어쨌다는 거에요? 커피 한 잔, 쓴 커피 한 잔 마시자는데 뭐 문제가 됩니까?

남대리
아니 그러니까 내 얘기는

김대리
그래요. 남대리님 얘기는 이 김대리가 살짝 미친년 같으니까 뭐가 이상하다 이거 아니에요?

남대리
그래. 맞아.

김대리
알아요. 나도. 그리고 사실 나 미쳤어요. 히히히히

남대리
김대리

김대리
미쳤다니까요. 나 오늘 완전히 맛이 갔어요. 완전히 맛이 갔다구요. 정말 나 미쳤어요. 히히히히히히

남대리
(끌어다 앉히며) 왜그래? 제발 조용히 좀 해. 창피하잖아.

김대리
(일어서며) 뭐가 창피해요? 나 미쳤다는데 나 미친 게 창피해요?

남대리
아니 그게 그러니까 저기

김대리
알아요. 내가 미쳤으니까 창피하죠. 미친년하고 이렇게 다니는 게 얼마나 창피하겠어요? 그래도 괜찮아요. 나 미쳤어요. 정말 미쳤어요. (꽥 소리 질러서) 나 미쳤어요.

남대리
(김대리를 끌어 앉히며) 저기 이거 봐. 이러면 안돼. 남들 생각도 해야지.

김대리
왜요? 왜 내가 남들 생각도 해야 하는데?

남대리
아니 그게

김대리
남대리님. 우리 뽀뽀나 한 번 할까요?

남대리
뭐라고?

김대리
우리 뽀뽀나 한 번 합시다.

남대리
정말 왜 이래? 정말 미친거야?

김대리
남대리님

남대리
응? 아 미안, 하돠 진정을 못하기에

김대리
그래요 맞아요. 정말 미쳤어요. 미쳤다니까요.

김대리
아! 웨이터. 왜?

웨이터
저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다른 손님들에게 방해가 됩니다. 죄송하지만 좀 앉아 주시겠습니까?

김대리
지금 나한테 뭐라고 했어요?

웨이터
네. 죄송하지만 앉아 주십시오.

김대리
오, 그래요. 미안해요 (앉다가 일어나며) 라고 말할 줄 알았죠? 왜요? 왜 앉아야 되는데? 난 앉기 싫은데.

웨이터
아니 저 손님.

김대리
그래 얘길 하시라고 얘길. 들을테니까.

웨이터
그러니까요 그게. 저기 여기는 공공장소고 또

김대리

웨이터
그러니까 저기

김대리
그러면 이렇게 하면 되겠다. 우리만 남겨 두고 여기 다른 손님들 다 내 보내지. 그건 어떨까?

웨이터
저기 손님.

김대리
왜 그렇게 안되겠어? 오늘 하루 매상 내가 다 낼게. 얼만데? 하루 매상이.

웨이터
아니 저 손님.

김대리
에헤, 그 친구 참 말 많네. 내가 돈 다 낸다고. 그러니까 다른 손님들을 다 내보내란 말이야.

웨이터
아니 저기

김대리
아니 저기고 여기고 어때 한 천만 원쯤 하면 되겠나?

남대리
아니. 저기 김대리.

김대리
가만히 계세요. 남대리님은. 아님 우리가 나가고.

웨이터
저 손님.

김대리
싫으면 말고. 남대리님 우리 나갑시다.

웨이터
아니 저기 이러시면

김대리
그래. 이러시면 곤란하다는 말 아니야. 그러니까 우리가 나간다고.

웨이터
아니 제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니고

김대리
아니고 뭐란 말이야?

웨이터
저기요. 그게.

김대리
앉을까?

웨이터
아니요

김대리
그럼 나갈까?

웨이터
… 예.

김대리
나갑시다.

#6 길거리

남대리
김대리. 기다려. 정말 왜 이러는 거야?

김대리
너무 재밌다.

남대리
김대리. 정말 왜 이래? 정말 미친거 아니야?

김대리
나요? 정말 미쳤냐구요? 그렇다니까요. 정말 미쳤다니까요. 저기요. 나 한 번 꼬집어 줘요.

남대리
정말 왜 이러는거야?

김대리
나 한 번 꼬집어 달라니까요.

남대리
그래? (세게 꼬집으며) 그래서 제 정신이 된다면

김대리
악!! 아니에요.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정말 꿈이 아니에요. 됐어요. 됐어요. 정말 됐어요. 있죠 남 대리님. 나 이제 더 이상 출근하지 않아요. 피곤한 몸으로 억지로 일어나 인상 쓰면서 출근하지 않아요. 나 이제 더 이상 일하지 않을 거에요. 그냥 하루 종일 놀고 먹기만 할 거에요. 우리 아침에 왜 출근해요? 몇 푼 안되는 월급 받으려 새벽부터 일어나서 출근하잖아요. 그 월급 몇 푼 되기나 하나요?

김대리
나 사실 엄청난 부자가 됐어요. 엄청난 부자. 나 돈 많아요. 이건 꿈이 아니라고요. 아, 행복해. 난 정말 행복해요. 온 세상이 다 내 것이에요. 모두 내 손에 있다구요. 이건 정말 꿈이 아니에요.

남대리
저 김대리

김대리
왜요?

남대리
아니 글쎄.

김대리
글쎄 뭐요?

남대리
아니 내 얘기는

김대리
그런데요?

남대리
아니 그러니까

김대리
그래 어쩌라구요?

김대리
아니 정말 이래서는

김대리
그래 이러서는

남대리
아니 정말 왜 이러는 거야?

김대리
나요. 복권에 당첨됐어요. 120억이요.

남대리

김대리
믿기지 않죠. 그래요. 나도 믿기지 않아요. 그런데 조금 전 남대리님이 나 꼬집었을 때 정말 아팠어요. 그러니까 이게 꿈은 아니에요.

남대리
저기

김대리
왜요?

남대리
저, 김대리

김대리
네.

남대리
그러니까 저기 그 저 괜히

김대리
남대리님. 사실 나 지금까지 남대리님을 지켜봤어요. 언제나 씩씩하게 출근하는 모습에 가슴 뛰었고. 난 남대리님의 애인이 되고 싶어요. 어때요? 우리 애인해요? 난 뭐든지 할 수 있어요. 내가 모든 것 책임질게요. 남대리님.

남대리
(약간 망설이며) 그럽… 시다.

김대리
우리 여행이나 떠날까요?

남대리
여행? 어디로?

김대리
멀리

남대리
응, 멀리? 제주도?

김대리
너 지금 장난하니?

남대리
아니, 그러니까 그게

김대리
다시

남대리
그러면 일본?

김대리
좀 더 멀리를 생각해 봐요

남대리
그럼 동남아?

김대리
정말 확!

남대리
알았어. 그럼 유럽

김대리
그래요. 유럽.

남대리
좋지. 유럽

김대리
그래. 유럽 일주. 한 달간. 우리 얼른 여행 떠나요. 유럽 아니. 세계일주를 해요. 아니야. 그보다는 우리 뚜껑 열리는 비엠떠블류 한 대 사서 그거 타고 북한 너머 중국 너머 유럽까지 운전하면서 가면 어떨까요? 재미 없게 비행기타고 쉭쉭 왔다 갔다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요? 난 사실 사막에 가고 싶었어요. 남대리님이 운전해요. 그러면 나는 차 위로 일어서서 모래바람 맞고 서 있을 테니까. 그게 내가 가진 가장 큰 꿈이에요.

남대리
사막? 비엠떠브류? 좋지요.

김대리
그래요. 까짓 돈이야 몇 푼 들겠어요? 내가 다 낼게요. 나 돈 많아요. 돈 많다고요. 얼른 갑시다 뚜껑열리는 비엠떠블류 한대 사러.

김대리
자! 갑시다! (무대 밖을 보고) 아니. 그런데 저 사람은 우리 김과장. 그래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고 했겠다. 당신이 내게 그렇게 많은 고통과 아픔을 주었겠다.

과장
(고개를 들고) 저 죄송합니다만.. 아니 자네는 김대리?

김대리

과장
아니. 김대리. 김대리 아니야?

김대리
이것 보세요. 지금 나한테 김대리라고 그랬어요?

과장
그럼. 자네에게 그랬지. 그리고 저 친구는 우리 옆 사무실의 남대리 아닌가?

김대리
이것 보세요. 어디에서 김대리 남대리 함부로 막 부르시는 건가요?

과장
뭐라고? 자네 어디 아픈가?

김대리
이것 보세요. 뭐라고? 자네? 왜 아무한테나 함부로 막 반말하시는 건가요? 댁이 왜 나한테 반말하느냐구요? 나도 막 반말할까요?

과장
아니. 김대리. 자네 정말 왜 이러나? 나는 자네의 과장이야.

김대리
이것 보세요.

과장
이봐.

남대리
얼른 사라져!

과장
에헴….

남대리
이래서 있을 때 잘해야 돼.

김대리
맞아요. 있을 때 잘.

남대리
이제 차를 사러 갈까요?

김대리
남대리! 이리와 나 좀 업고 갈래?

남대리
네?

김대리
왜? 뭐 문제 있어?

남대리
아니. 아닙니다.

김대리
(업히며) 오케이, 자 가자고.\

남대리
네.

김대리
야, 기분 좋다. 남대리 님도 기분 좋죠?

남대리
네.

김대리
이럴게 아니라 우리 회사나 한 번 들어갑시다. 그래서 큰 소리로 우린 떠난다고 소리라도 지르고 나옵시다.

남대리
아니, 그건 좀

김대리
왜요? 뭐 두려운 것 있어요? 두려울 것 없잖아요. 가서 정말 멋지게 한 마디 하고 싶어요.

남대리
에이, 그건 좀 그렇다.

김대리
왜요? 뭐 무서운 것 있어요?

남대리
아니, 그래도 조금 전까지 열심히 다니던 회산데.

김대리
그래 하긴 그렇지. 내 인생이 달려 있었지. 그럼 그냥 가서 살짝 자랑이나 하고 갑시다. 어차피 사직서도 내야 하고.

남대리
자랑? 아니 나는

김대리
왜요? 혹시 남대리님 애인이 우리 회사에 있어요? 사내연애는 금지되어 있는데.

남대리
아니야 그게.

김대리
그럼 뭐에요?

남대리
아니. 그럼 가자고. 자 출발.

#7 회사

김대리
(큰소리로) 안녕하세요?

1
어? 김대리! 어디 갔다 왔어?

김대리
나? 나 회사 그만 뒀어.

2
뭐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김대리
응. 이제 그만 둘 거라고. 뭐랄까 나도 이제 내 사업할 때가 된 것도 같아서 말이지. 그래서 내 사업 시작하기 전에 너희들에게 인사나 하고 여행이나 갔다 오려고.

3
무슨 사업할 건데? 어디로 갈 건데?

김대리
무슨 사업인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고, 여행은 뚜껑 열리는 비엠데블류 한대 사서 그거 타고 세계 일주나 하려고 해. 나 사실 돈이 많은 여자거든.

4
저기. 김대리. 너 혹시 뭐 문제 있니? 오늘 아침에 과장님께 깨진 이후에 충격이 커?

김대리
뭐 그런 단순한 일을 가지고. 그리고 과장님은 이미 밖에서 만났어.

5
응? 어디에서?

김대리
응, 저 밖에서. 내가 과장님께 드릴 것이 있거든. 여행 떠나기 전에 과장님께 드리고 여행 떠나라고.

상희
(뻘쭘한 남대리를 보고) 그런데 자기는 웬일이야?

남대리
나? 험, 그러니까 그 저 거 그게 왜 저

상희
아니. 오늘 무슨 시장조사 나간다면서? 그런데 왜 김대리하고 같이 들어왔어?

남대리
아 그러니까 그게 그럴 일이 좀 있어.

상희
그럴 일이라니?

남대리
아니 저기 나중에 얘기해 줄게.

상희
이거 정말 이상하네. 그리고 왜 자기 사무실이 아니라 우리 사무실에 와 있어?

남대리
아니 그게 말이야. 있잖아

김대리
(쓰던 걸 다 쓰고) 응, 남대리님? 나하고 같이 여행 떠나기로 했어.

1
여행?

2
너하고 같이?

김대리
응. 왜 안돼?

3
아니 뭐 안될 건 없지만.

김대리
응, 오늘 부로 애인 정리하고 나하고 애인 하기로 했어. 그 기념으로 우리 세계일주하려고.

상희
김대리. 너 어디 아프니?

김대리
나? 왜?

상희
너 진짜 아무렇지도 않아?

김대리
나? 응, 나 사실… 미쳤어.

김대리
(과장에게) 안녕하세요? 오늘 자주 뵙네요. 제가 드릴게 있는데요.

과장
이게 뭔가? 나한테 어떻게 했는지 잘 기억하고 있겠지?

김대리
예. 일단 그 봉투를 한 번 열어보세요.

과장
봉투? 이런 걸로 뭔가 해결하려는 생각은 않는게 좋을 거야.

김대리
그러니까요. 그런데 어쩌죠? 그걸로 단박에 결론이 날텐데.

과장
단박에?

김대리
자, 여러분. 그 동안 신세 많이 졌습니다. 우리가 떠난다고 너무 아쉬워 마세요. 여러분 모두에게 행운이 함께하길 빌게요. 잘 있어요.

남대리
얼른 갑시다.

김대리
그래요. 여러분 안녕…

사장
그래. 수고들 해요. 나 지나가다가 여기가 시끄럽길래 뭐 좋은 일이라도 있나 하고 들렀어요. 어디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어요? 나도 같이 좋아합시다.

과장
아닙니다. 아무 일 없습니다.

김대리
(앞으로 나서며) 아닙니다. 있습니다.

과장
아닙니다. 아무 일 아닙니다.

김대리
아닙니다. 아무 일 있습니다.

사장
있어? 그래 자네는?

김대리
네. 저는

사장
잠깐. 자네가 그러니까 김대리 김대리 김대리지?

김대리
네. 김성실입니다.

사장
그래. 그래. 김성실이. 미안. 내가 잠시 자네 이름을 잊었다 아이가. 그런데 너 말이다. 가만, 오늘 오전에 과장이 가지고 온 그 시장 분석한 보고서 말이다. 그거 니가 한 거이 맞나?

김대리
예.

사장
그 보고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김대리
예?

사장
그 보고서에 대한 자네의 의견이 뭔지를 묻는 거야. 예를 들어 100점 만점에 몇 점짜리 보고서일까?

김대리
저, 생각을 해보지 않았는데요….

사장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럼 잘 만들었다고 생각하나 잘 못 만들었다고 생각하나?

김대리
잘 모르겠습니다.

사장
잘 몰라? 너 이 회사에 월급받으며 다니지?

김대리
예.

사장
그럼 네가 받는 월급 값어치를 충분히 한다고 생각하나?

김대리
저기….

사장
너무 엉망이란 생각이 들지 않나?

김대리
네?

사장
뭐랄까? 알맹이가 빠지고 껍데기만 번지르르하게 포장한 왜 그런 것 있잖아.

김대리
죄송합니다.

사장
그래. 죄송해야 해. 자네는 이곳에 돈을 받으며 일하러 다니고 있어. 그리고 나도 자네들이 정말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고.

김대리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애쓰신다고요? 그러면 우리가 원하는 것이무엇인지 혹시 알고 계시나요? 제가 몇 가지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사장
(웃으며) 그래? 그렇게만 하면 이 회사가 다 잘될 수 있다는 건가?

김대리
네.

사장
그러니까 자네는 내가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건가?

김대리
네.

사장
그러니까 월급을 많이 주고

김대리

사장
빨간 날은 빠짐없이 잘 놀 수 있도록 해주고

김대리

사장
혹시 땡땡이를 치더라도 모른척 해주고

김대리

사장
사내 연애도 할 수 있도록 하고

김대리

사장
칼 퇴근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김대리

사장
마음대로 여행 다닐 수 있도록 지원도 하고.

김대리
네.

사장
그런데 실제는 그렇게 진행되지 않는다?

김대리
네.

사장
그렇다면 미안하네. 나는 사실 자네가 생각하는 그런 회사를 만들고 싶었는데 잘 안 되었군.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사직을 하면 될까?

김대리
네?

사장
내가 회사 운영을 잘못 해서 자네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없다니까 내가 사직을 해서 모두의 편의를 도모하는 것이 내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김대리
저 사장님.

사장
아니 그보다는 자네가 사장을 하게나. 그래서 모든 직원들을 골고루 보살펴 주게. 나는 오늘 부로 사직하겠네. (주머니에서 사직서를 꺼내 주고 퇴장하며) 좋은 회사를 만들어 주게. 김대리 아니, 김사장.

김대리
(따라 나서며) 아니. 저 사장님. 무슨 일이 이렇게 돼가고 있지? 아니 나한테 사장을 하라고? 난 여행 떠나야 하는데. 저 과장님.

과장
네. 사장님.

김대리
아니 과장님은 또 왜 이러세요?

과장
이제 사장님께서 우리 회사 사장이시니까 사장의 역할을 하십시오.

김대리
아니 정말 이러시깁니까? 그래요. 까짓 거 하라면 못할 것도 없죠. 합시다. 하자구요. 허허..

남대리
김대리.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얼른 비엠떠블류 사가지고 세계 일주 떠나야지.

김대리
남대리. 지금 나한테 한 얘긴가?

남대리
아니. 김대리.. 사장님.

김대리
과장님.

과장
네. 사장님.

김대리
난 지금 사장실에 가 있을 테니까 뭐 얘기할게 있는 사람은 누구나 얘기하러 오라고 하세요.

과장
네. 사장님.

김대리
그리고. 남대리.

남대리
예.

김대리
자넨 왜 그러고 있나? 빨리 가서 일해!

남대리
아니, 저 비엠떠블류…

김대리
뭐라고? 비엠떠블류? 자네 지금 제 정신인가?

남대리
죄송합니다.

김대리
얼른 가서 일 하세요!

#8 사장실

비서
(들어와서 인사하고) 사장님. 박이사님 오셨습니다.

김대리
이사님?

비서
네.

김대리
일단 모시세요.

비서
네.

이사
아, 새로 취임한 사장님이시군요? 젊은 분이라 일단 기분이 좀 얼떨떨합니다.

김대리
반갑습니다. 앞으로 많이 도와 주십시오.

이사
좋습니다. 좋아요. 제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돕겠습니다.

김대리
그래서요. 일단 직원들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서 월급을 모두 올리면 어떻습니까?

이사
월급을 올린다. 좋죠. 얼마나 올리시겠습니까? 한 30% 정도씩 올릴까요?

김대리
30%? 좀 많은 것 같지만 좋죠.

이사
그렇게 하겠습니다. 월급 30% 인상. 다음은요?

김대리
네. 다음은 솔로탈출이 가능할 수 있도록 회사 내에 미팅룸을 만들고 싶습니다.

이사
미팅룸? 그럼 누가 누구를 만나게 되나요?

김대리
그거야 당연히 회사 내에서 서로 만나게 되겠죠.

이사
회사 내 직원들이 서로 만난다. 좋습니다. 다음은요.

김대리
다음은 직원 휴가제를 만들겠습니다. 우리 회사는 이제 일주일에 4일만 일하면 됩니다.\

이사
일주일에 4일? 그럼 월화 일하고 수 쉬고, 또 목금 일하면 되겠네요. 아주 좋습니다.

김대리
다음은 칼 퇴근 보장입니다. 우리 회사는 시간이 되면 모두 무조건 퇴근합니다. 9 to 5!

이사
무조건 퇴근.

김대리
다음은 땡땡이 눈 감아 주기 입니다.

이사
땡땡이 눈감아 주기.

김대리
다음은 돈 안 들이는 여행보장하기. 회사에서 여행비용을 모두 대 줍니다.

이사
돈 안드는 여행.

김대리
됐습니다. 이상을 이사회에 보고하고 통과시킬 테니까 이사님께서 처리해 주십시오.

이사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김대리
감사합니다. 이제 가보셔도 됩니다.

이사
네. (퇴장)

김대리
(이사가 퇴장 한 후) 가만, 그런데 내가 지금 뭘 하는 거지? 비엠떠블류 사가지고 세계일주하기로 했잖아. 안돼. 세계일주 해야 해. 갑자기 사장이 됐다고 여기에 머물러서는 안돼. (망설이며) 그런데… 이제 내가 사장이 됐잖아. 그리고 회사도 내가 원하는 대로 됐고… 내가 바라는 대로 됐고 … 칼 퇴근 땡땡이 연애도 할 수 있고 월급도 많아지고. 내가 일 처음 시작할 때 희망했던 게 이건데.… 이거 그대로 두고 여행을 가자니 아깝잖아. 그래. 한 1년만 사장 노릇을 하다가 천천히 쉬어도 되지. 그래. 이것도 다 기회야. 그 할머니가 나에게 주신. 감사합니다. 할머니. 그래. 다 돈 많이 벌자고 하는 일인데 나한테 주어진 일을 내가 왜 내 손으로 거부하겠어? 됐어. 난 이제 사장으로 일할 거야.

총무부장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총무부장입니다.

김대리
아, 네. 어서 오세요. 무슨 일이신가요?

총무부장
네. 일단 사장님께서 지시하신 내용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김대리
무슨 지시 말입니까?

총무부장
사장님 지시에 따르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그 중에서 특히 월급 30% 인상과 주 4일 근무, 그리고 여행비용 회사부담 등을 얘기하신 것으로 압니다.

김대리
그래요.

총무부장
무슨 돈으로 월급 인상하고 여행비용 댑니까? 그리고 모두 일찍 퇴근하고 4일만 근무하면 누가 일합니까?

김대리
그런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게 부장님 일 아닌가요?

총무부장
저는 주어진 범위 내에서 그 예산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를 생각하지, 없는 돈을 만들어 내서 그 돈으로 직원 복지를 생각하는 일은 제 일이 아니라 바로 사장님의 일이라 생각합니다. 혹시 직원들 월급을 갑자기 30% 올리면 우리 회사 재정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그리고 일주일에 4일 일하면 얼마나 많은 문제가 생기는지 아십니까? 만일 이 지시를 정말로 시행하면 우리 회사는 아마 한 달 내로 문 닫아야 할 것입니다. 운영이라는 것은 그렇게 감상적으로 즉흥적으로 할 일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 회사 모든 직원들의 운명이 사장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물론 선심도 좋고 복지도 좋고 모두 다 좋지만 일단 운영이 된 다음 일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앞뒤 판단도 없이 함부로 결정하실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장님께서는 지금 우리를 절벽으로 끌고 가고 계십니다.

간주

김대리
아니. 이것 보세요. 놀자는데 싫어하는 사람들이 어디에 있습니까?

총무부장
놀자구요? 왜 놉니까? 우리가 할 일이 없습니까? 분명 할 일이 있는데 왜 논단 말입니까? 그러다 회사 문닫으면 누가 책임 집니까? 안됩니다. 이렇게 함부로 회사를 운영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김대리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내가 사표 내면 되는 것 아닙니까? 난 안합니다. 안한다구요. 나 그렇지 않아도 세계일주하려던 참인데, 참 무슨 일이 이렇게 된다냐?

김대리
자 이제 당신이 이 회사 사장을 하시오. 나는 이제 떠날 테니까.

총무부장
아니. 저 제 얘기는 그런 것이 아니라.

김대리
그러니까 내가 떠나면 모든 것이 해결되잖아요

총무부장
아니 글쎄 그것이

김대리
그게 뭐라고요?

총무부장
그러니까 제 얘기는 그 저

김대리
그래 알았어요 알았어. (총무부장을 밀어 내고 옆 사람을 끌어 내서) 그렇다면 당신이 사장을 하시오. 좋은 회사를 만들어 주시오. 사장님.

#9 길거리

김대리
아이고. 깜짝 놀랐네. 정신없어. 그나저나 이게 무슨 일이지? 아침부터 사표를 내지 않나? 복권을 받아서 부자가 되지 않나? 게다가 사장까지. 그리고 또 사표. 정말 정신없는 하루로군. 가만있어봐. 그런데 지금 내가 뭔가를 하다가 말았는데. 그래 유럽여행. (전화를 꺼내서) 여보세요. 아, 남대리. 아니 남대리님. 네 저에요. 어디 계세요? 빨리 나오세요. 나 이제 더 이상 사장 아니에요. 얼른 비엠떠블류 사러 가자고요. 아니 농담이 아니라 어서 출발해야죠. 아니 왜 그러세요? 네? 아니에요. 조금 전에는 그냥 한 번 해 본 얘기죠. 내 생각은 언제나 변함이 없어요. 남대리님과 함께 세계일주하고 돌아오는 것이죠. 저기요. 아니에요. 사실이에요. 남대리님. 네. 알았어요. 그럼 혼자라도 떠나야죠. 네. 안녕히 계세요. (잠시 좌절. 여행사에 전화) 그래. 기왕 떠나기로 했던 거, 나 혼자라도 떠나야겠다. (전화를 꺼내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여행사죠? 여행을 떠나려는데요. 네. 내일 당장 떠나고 싶거든요. 유럽이나 아니면 남미? 아니, 차라리 아프리카는 어때요? 네. 좋죠. 당장 갈게요. 네. 네? 여권이요? 그리고 남미나 아프리카는 비자도 필요하다고요? 나 여권 어디있는지 모르는데…. 그럼 언제 떠날 수 있어요? 일주일이나 한 달이요? 아니 여보세요. 나 돈 있어요. 얼마든지 낼 수 있으니까 당장 자리를 만들어 봐요. 내가 열 배 낼게요. 뭐라고요? 네. 네. 네. 알겠습니다.

김대리
(갑자기 눈물이 난다. 눈물을 흘리며) 엄마. 나야. 엄마 잘 지내지? 미안해. 자주 연락도 못하고. 나 사장됐어. 그래 사장. 아니 참, 그만 뒀어. 농담 아니야. 진짜라니까. 조금 전에 우리 회사 사장됐다가 또 그만 뒀어. 그리고 나 복권 당첨됐어. 120억이야. 그럼 큰 돈이지. 엄마 내가 집도 새로 사주고 차도 새로 사주고 뭐든지 엄마가 해달라는 것 다 해줄게. 아니 농담 아니라니까. 이거 정말이라고. (울컥한다. 뭔가 모르게 폭발한다. 엄마니까.) 정말이야. 엄마. 엄마까지 왜 이래? 내가 언제 엄마한테 이런 농담했어? 정말이라고. 내가 조금 전에 우리 회사 그만두려다가 사장님이 나에게 사장을 하라고 해서 사장을 하다가 또 내가 직원들이…..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다. 운다.) 엄마, 미안해. 미안해. 하지만 이거 거짓말 아니야. 그리고 내가 120억 복권 당첨된 것도 거짓말 아니야. 엄마 미안해. 내가 다시 전화 걸게.

김대리
그래. 다 잘 될 거야. 나 돈 있는데 뭐. 120억. 생각만해도 뿌듯한 120억. 안 되는 일이 뭐가 있어? 남자? 안되면 사지 뭐. 그리고 여행, 여행… 가면 되잖아. 에휴, 어쨌든 돈 가지고도 안 되는 일이 있구나.

김대리
아니, 할머니.

할머니
어때? 재미 있어?

김대리
예?

할머니
잘 돼가고 있냐구?

김대리
아니요. 뭔가 잘 안되고 있어요.

할머니
왜? 뭐가 문젠데? 돈만 있으면 다 해결되는 것 아니었어? 아이고 얼굴이 왜 그렇게 우울해 보여? 아침에 출근할 때보다 더 나쁜 얼굴이네. 내가 그 얼굴 펴 주려고 행운을 가져다 주었는데 그 행운이 해결책이 아닌가 보군. 그럼 그 행운 회수해야겠네.

김대리
예? 안돼요. 할머니! 절대!

할머니
그럼 어떻게 할건데? 나는 처녀가 웃음을 되찾으라고 행운을 준 건데 웃음을 되찾지 못한다면 행운도 필요 없잖아. 회수하는 게 정상이지.

김대리
안돼요. 웃을게요.

할머니
그렇게 웃어서 되겠어? 뭔가 시원하게 웃어야지.

김대리
이렇게요?

할머니
좋아. 그러면 이렇게 하지. 시간을 조금 더 줄 테니까 스스로 해결해 봐. 왜 얼굴에서 표정이 없어졌는지 이유를 찾아서 해결하라고. 그래서 웃는 얼굴을 다시 찾으면 모든 걸 그대로 남겨 두고, 만일 찾지 못한다면 아침에 주었던 행운도 다시 회수한다. 알았지? 그럼 잘해봐.

김대리
안돼. 이건 말도 안돼. 난 직장도 뛰쳐나왔는데 이제 돈까지 회수 당하면? 아이 끔찍해. 갑자기 뭐가 이렇게 꼬였지? 해결책을 찾아야 해. 웃어야 해. 웃어. 가만히 생각부터 해보자. 내가 언제부터 웃지 않게 되었는지

면접관
그래 만일 우리회사에 채용되면 어떻게 할지 한번 얘기해 볼까요?

김대리
무라가키 류의 소설 식스티나인에 “즐겁게 사는 게 이기는 거야” 라는 말이 나옵니다. 즐겁고 긍정적인 마음은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고 믿습니다. 저는 언제나 즐기면서 일을 하고 힘든 일이 있을 수록 더욱 더 웃으려고 노력합니다. 웃음은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 굳게 믿기 때문입니다. 또한 저의 웃음 바이러스가 주위 사람들에게로 퍼져 그들 모두의 엔돌핀도 상승시킬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즐기면서 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고난도 극복할 수 있고 못 해낼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저는 100% 준비되어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채워야 할 빈자리를 알고 끊임 없이 노력하여 회사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인재인 발전적이고 독창적인 사원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글로벌 시대에 맞게 영어와 중국어 등 외국어 연마에도 힘써서 세계 속의 기업이 되는 것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겠습니다. 이 회사와 귀한 인연이 되어 만나 뵙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김대리
그래. 바로 이거야. 내 마음이야. 내 삶이 즐겁게 살려는 내 마음을 패배시킨 거야. 그래서 내 얼굴이 무표정해진 거야.

김대리
이것이 처음 내 마음이었어. 하지만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지루한 일들, 업무가 많아서 피곤해지고, 쉬고 싶을 때조차 마음 편하게 쉴 수도 없고, 수시로 부딪치는 상사의 잔소리 동료와의 언쟁 그리고 후배들의 추월. 신경 쓸 일이 너무 많아. 내가 왜 일하는지 생각도 하지 못하면서 일에 끌려 다니게 됐지. 삶에는 변화가 없어지고 그냥 습관이 됐어.

김대리
할머니! 할머니 어디 계세요? 찾았어요. 할머니! 이제 웃을 수 있어요. 왜 내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는지 이제 알았어요. 확실하게 알았어요. 어디 계세요?

암전.

#10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