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 내일

A MUSICAL PLAY

김 균 형 작
곡 / 미정

창작배경

우리는 하루 하루를 살아 가고 있다. 어떤 사람은 최선을 다해, 또 다른 사람은 대충 대충. 최선을 다하든 대충 대충 살든, 언제나 오늘 하루에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 원치 않는 실수를 하기도 하고 또 잘못된 길로 빠지기도 한다. 우리의 오늘이 원하는 대로 진행되었든 아니든 내일은 언제나 온다. 반드시 온다. 그리고 그 내일은 우리가 살아서 맞이하고 보내야 하는 또 하루이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을지라도 내일은 반드시 오고 그 내일은 반드시 내가 살면서 보내야만 하는 내 인생의 하루이다. 내일은 과연 기대할 가치가 있는가? 내일은 과연 희망할 가치가 있는가? 나는 내일에 커다란 가치를 주고 싶지는 않다. 어차피 내일이란 오늘의 연속일 것이며 오늘과 커다란 차이가 있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미리 포기할 필요도 없다. 큰 차이가 없을 뿐이지 분명 오늘과는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에서 이 대본을 썼다. 기대할 수도 또 안 할 수도 없는 내일. 일단 살면서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하자. 이것이 이 대본을 쓴 동기이다.

등장인물

A팀
김대리 M 30초 잘 나가다가 슬럼프를 겪는 주인공 / 후배의 도움으로 회복
박철수 M 20말
유지수 F 20중

B팀
이대리 F 30초
최순희 F 20말
미스터송 M 30말

정과장 F 40중
부장 M 40말

코러스

무 대

꿈속 상상 공간
패션회사 디자이너실
길거리
술집
등등.

이 작품은 공연을 통한 시각적인 이미지들의 구성이 중요하며 특히 가운데 부분에서 객석과 완전히 하나가 되는 장면에서는 배우들이 객석을 돌아다닐 수 있도록 조명도 준비되어야 한다. 어쨌든 시각적 이미지들을 보다 확장시킬 수 있는 상징적인 무대면 좋을 것 같다.

시놉

1 프롤로그
김대리의 꿈 – 이 작품의 주인공인 김대리의 꿈 속에서 이 작품은 시작된다. 왕이 되어 호령하다가 잠을 깨게 되고 늦은 아침 출근을 서두른다.
2 아침
유쾌하지 못한 하루의 시작 – 트렌드 분석 및 브랜드 컨셉 피티에서 미쳐 준비하지 못한 김대리의 참패. 화가 난 실장은 김대리에게 내일까지 다시 보고하라며 길거리로 내 쫓는다.
3 길
유행을 찾으며 – 시장 분석을 위해 길거리에 나선 디자이너들. 김대리는 자신의 각오를 다진다.
4 내일을 향해
고통을 잊으려 – 저녁 시간 한잔 하면서 하루의 고통을 달랜다. 한탄도 하고 욕도 하고 희망도 얘기하고.
5 우리는?
인생은 싸움? – 퇴근길에 만난 동료 디자이너들. 얘기가 이상하게 진행되다가 급기야 싸움판으로. 우리 인생은 싸움판 아닌가?
6 하루가 저물고
하루를 마무리하며 – 모두는 후회하며 집으로 돌아가지만 지난 일은 지난 일. 지난 일은 잊고 내일을 기대하며 또 하루를 시작해야지. 아쉬움은 아쉬움이고 지난 일은 지난 일이고, 남은 날들이 더 중요하지.

폰트칼라

대사 검은색
해설 지문 푸른색
노래 주황색

#1 프롤로그

부장
자 여러분 우리 회사 최대의 행사, 올해의 디자이너상 시상식이 있겠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다 아시는 것처럼 이 상은 올 한해 우리 회사에서 출시한 모든 제품 중 가장 뛰어난 제품을 출시한 디자이너에게 수여되는 명예로운 상입니다. 자 우선 수상 후보작을 보시겠습니다.

부장
자 제 손에 올해의 디자이너가 될 디자이너 사원의 이름이 있습니다. 개봉하겠습니다. (개봉해서 열고) 올해의 디자이너 김봉남!

부장
올해의 디자이너 상. 김봉남. 이 사람은 뛰어난 디자인으로 우리 회사의 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웠으므로 이 상을 드립니다.

사장
사원 여러분. 잠깐 착각이 있었습니다. 계산이 잘못 되었습니다. 그래서 수상자가 바뀌어야겠네요. (김대리에게) 김대리 미안하네. 자네는 그만 내려 가고. 자, 발표합니다. 올해의 디자이너! 이지혜! 이대리! 이리 올라오게. 다시 읽겠습니다. 올해의 디자이너 상. 이지혜. 이 사람은 매우 뛰어난 디자인으로 우리 회사의 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웠으므로 이 상을 드립니다. 대표이사 김철호.

이대리
오늘은 제가 쏩니다. 모두 갑시다. 구내식당으로!

김대리
아이고. 또 하루가 시작이로구나. 아, 피곤하다. 피곤해. 요새 같아선 정말 살맛 안 난다. 가만 오늘 트랜드 분석 피티 있지! 참 죽겠네. 일은 손에 잡히지 않지, 부장님이 허구한날 불러내서 따라다니느라 아무 것도 못하지, 감각은 자꾸 떨어지는 것 같지. 정말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네. 오늘 피티 인사고과에 반영된다고 했는데. 제대로 준비도 못했는데 큰일이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냐? 아 정말 죽겠다. 에라 모르겠다. 한 우물만 파라고 했다. 부장님께 매달리자. 부장님께서 다 챙겨주시겠지. 아 피곤해.

#2 아침

A
정말 멋지지 않습니까? 저 에스 라인!.

A
빨리 의상 모두 가져 와. 얼른 심사보고 출국 준비 해야 돼.

A
내 보고서 다 어디 갔어? 내 보고서 빨리 챙겨서 결재 맡고 나가야 할 것 아니야. 빨리 내 보고서 찾아줘.

이대리
좀 더 멋지게 걸어줘. 그렇게 해서는 옷이 안 살잖아. 얼굴은 뭐 하러 그렇게 빳빳이 드느냐 말이야? 머리 숙여! 옷을 살려야지!

A
디스플레이 좀 제대로 해라. 이걸 걸어 놓은 거라고 걸어놨냐? 도대체 개념이 없어.

A
나한테 뭐라고 하지 마세요. 나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 하고 있다구요.

A
너 지금 나한테 덤비는 거냐? 눈에 뵈는 게 없어? 너 잠깐 이리 따라 나와봐.

김대리
디자인이 이게 뭐냐? 넌 기본이 안돼 있어. 대한민국 사람은 이런 디자인 옷 안 입어. 좀 똑똑히 보고 다녀라.

A
저기 내 바늘 본 사람 없어?

A
난 겁 안나. 그래 해 보자고.

A
아니 정말 똑바로 걷지 못할 거야?

A
그러니까 걸음걸이가 그 모양 아니야?

이대리
자, 우리 흥분하지 말고 일단 일이 되도록 차분하게 정리합시다.

A
너나 잘해. 남의 일에 끼어들지 말고.

A
저 선배 우리는 어떻게 할까요? 그냥 못들은 척 가만히 있을까요?

A
그래. 우린 어차피 관심 밖인 것 같으니까 일찌감치 점심이나 먹으러 가야겠다.\

A
내 옷 내놔. 내 옷 내놓으란 말이야.

김대리
참, 디자인 하고는. 너 지금 장난하냐? 이게 디자인이냐? 내가 하면 5분 만에 이런 디자인 50개는 나오겠다. 그렇게 안목이 없어서야.

A
재는 항상 피티만 있으면 저래. 준비도 제대로 안하고 있다가 마지막에 저러면 되겠어?

A
자 우리 남의 일엔 신경 쓰지 말고 우리 일이나 제대로 하자고.

A
제발 내 옷 좀 찾아줘.

A
나도 일 좀 하자. 제발 협조 좀 해줘.\

김대리
(전체를 돌아 다니며 보고 난 이후) 참, 하나 같이 엉망이로군. 저런 걸 디자인이라고 하고 있으니. 한심하다 한심해.

유지수
대리님. 준비 되셨어요?

김대리
나? 응 아니 뭐 그냥 그렇지

박철수
이번 피티하고 모아서 팀 작업하기로 했죠. 대리님 기대하겠습니다.

김대리
기대는 무슨, 자 얼른 준비들 해.

정과장
오케이. 자 여러분 새로운 하루가 밝았습니다.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합시다. 오늘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예고한대로 내년 트렌드 분석 피티 및 브랜드 컨셉 발표를 하는 날입니다. 오늘의 개인 발표를 기초로 여러분 팀 작업을 하게 되니까 오늘의 작업은 특히 여러분 개개인에게 매우 중요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아마 모두 충분히 준비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할 점은 오늘의 피티가 여러분 인사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 그래서 공정한 평가를 위하여 사장님과 부장님께서 친히 여러분의 피티에 참가하신다는 사실! 잘 기억들 하고, 자, 곧 시작하도록 할 테니까 준비들 하기 바랍니다.

김대리
사장님과 부장님이 참가하신다고? 큰일 났군!

A
자 자 어서 빨리 준비하자고

이대리
오케이. 드디어 기회가 왔어. 저 능력 없는 김대리 보다는 내가 먼저 승진해야지.

B
어느 색깔이 더 좋을까?

최순희
빨간색! 그래 역시 빨간색이 포인트야!

C
아니야! 안돼! 이건 정말 아니야.

A
내게도 기회가 올 거야.

과장
모두들 준비는 잘 되고 있어?

미스터송
네. 네. 잘 되고 있습니다.

정과장
여러분 사장님과 부장님께서 드디어 오셨습니다.

김대리
정말 큰일이네. 모두 철저하게 준비한 모양인데. 그래도 내가 보기에는 다 형편 없어. 쟤들 색깔이며 저 어깨 라인하며 무슨 디자인을 저렇게 뽑냐? 정말 한심하구만.

과장
곧 피티 시작할 테니까 모두 준비하도록.

김대리
정말 큰일이네. 사장님 부장님 실망시켜 드리면 안 되는데. 내가 왜 이렇게 됐지? 혹시 나 밑천 다 떨어지고 능력이 바닥이 난 것 아닌가? 안돼. 큰일이네.

미스터송
완전히 준비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하나?

유지수
이제 나도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야 할 텐데.

이대리
오케이. 멋지게. 이대리! 너를 믿는다.

김대리
어제 저녁 마신 술은 왜 이렇게 안 깨는 거야?

이대리
(앞으로 나서며) 과장님! 허락하신다면 오늘 피티는 제가 먼저 시작하고 싶습니다.

이대리
(마이크 들고 설명한다) 내년에 예상되는 패션 경향에 대하여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전체적으로 “로맨틱한 여성스러움”과 “모던 클래식”이 내년 유행의 테마가 되리라 평가됩니다. 첫 번째, 낭만적인 스타일이 반영되고 여성스러움이 강조된 로맨틱 페미닌 룩이 주요 패션테마가 될 것입니다. 두 번째, 20년대와 40년대의 패션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는 모던 클래식도 또 다른 하나의 트랜드가 될 것입니다. 이는 현대적으로 재현된 정통 복고풍, 숙녀다운 우아하고 글래머러스한 여성미에 초점을 맞춘 클래식한 패션으로의 경향을 말합니다. 특히 무릎 선까지 오는 길이의 스커트나 혹은 허리선을 낮게 잡은 H라인 원피스 등이 주를 이루는 플래퍼 룩(flapper look)을 통한 섹스 어필이라는 경향이 또 다시 등장할 것입니다. 게다가 40년대 영화 “사브리나”에서 오드리 헵번이 선보였던 동그란 어깨선, 올라가 보이는 가슴선, 피트가 강한 허리선, 우아함을 강조한 플래어 스커트로 구성된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뉴 룩”이 새롭게 선보여 여성 정장의 클래식으로 다시 한번 패션계를 이끌 것으로 보여집니다. 결론적으로 “로맨틱한 여성스러움”과 “모던 클래식”을 기본 트랜드로 하는 내년 패션에서는 자연스런 스타일의 재킷과 잘록하게 허리가 들어간 테일러드 재킷이, 그리고 무릎선 길이에 풍성한 스타일의 스커트가 주목을 받을 것이며 특히 40년대 대표 스타일인 “뉴 룩”처럼 “피트 앤드 플래어” 실루엣이 가장 핵심이 되리라 평가됩니다.

정과장
오케이. 이대리 수고했어.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피트앤플래어가 대세일 것이다. 이런 얘기로군. 고생했어 이대리. 이제 우리 사무실의 고참 디자이너 김대리! 김대리, 이대리 한 것 봤지? 어떻게 생각해?

김대리
예? 예. 예 그러니까… 뭐 … 그게 저기 뭐랄까 예 그렇죠 괜찮은 것 같네요. 그런데 전반적으로 분석의 바탕이 빈약해 보입니다. 피트앤플래어가 트렌드가 될 것이라면 왜 그렇게 될지에 대한 논리적 분석이 있어야 하는데 그냥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들 다 하는 이야기를 다시 정리한 것에 불과해 보입니다.

정과장
오호? 그래? 이제야 말로 자네의 진가를 다시 보여줄 수 있겠군. 오케이 알았어. (톤을 바꾸어) 그런데 말이야 사실 나도 자네를 믿고 싶어. 최근 들어 뭔가 나를 자꾸 실망시키는 경향이 있는데. 원래는 그렇지 않았잖아. 안 그래? 계속 지금처럼 나가면 정말 곤란해. 더 이상 날 실망시키지 말라고. 에이스로서의 면모를 다시 보여줘. 자네가 제일 고참이니까 자네가 승진해야 하지 않겠어? 지금 사장님 부장님 모두 계시니까 확실하게 자네가 최고라는 걸 알려 드리라고. 조금 전 후배가 한 것 보다는 훨씬 좋아야겠지? 준비 됐지? 자 나와서 뭔가를 보여 달라고.

정과장
(화가 나서 ) 김대리~!!!!

정과장
뭐야? 무슨 일이야?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았어?

김대리
죄송합니다. 어제는 부장님이 잠깐 저를 보자고 하셔서.

정과장
뭐라고?

김대리
부장님께서 저녁에 저를 보자고 하시는 바람에 미쳐 준비를 못했습니다.

정과장
그러니까 부장님이 자네 불러내서 오늘 피티 준비하지 말아라 이렇게 말했다는 거지?

김대리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러니까 부장님이.,

정과장
그래 부장님이 어쨌는데?

김대리
그러니까 그게 있잖습니까? 부장님이 그러니까 제 대학 선배신데 그게 한잔 하자고 하셔서 그러니까 죄송합니다. 부장님이 한잔 하자고 하시는데 거부할 수도 없고 또 제가 말단직원이 어떻게 그러니까

정과장
내가 이거 언제부터 준비하라고 했어? 어제 얘기했어? 벌써 한달 전부터 준비하라고 한 거 아니야? 그리고 중간에 확인할 때마다 잘돼가고 있다고 하지 않았어?

김대리
죄송합니다. 정말 제가 준비를 하려고 했는데요 부장님이 개인적으로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고

정과장
그래? 개인적으로 어떤 말이?

김대리
그러니까 그게 개인적인 일이라서 저기 그 뭐냐 저

정과장
아 그러니까 자네는 부장님하고 같이 노는 사이니까 나 정도는 눈에 안 띈다 이런 얘기야?

김대리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정과장
그게 아니면 뭐야?

김대리
아니 저기 부장님이 ….

정과장
(화가 나서) 야!!! 김대리!!!!

미스터송
지금 여러분께서는 김대리가 너무 편하게 일을 생각한 나머지 정과장에게 깨지는 장면을 생중계로 보시게 됩니다. 해설자로 박철수씨를 모십니다. 안녕하십니까?

박철수
네. 안녕하십니까?

미스터송
오늘의 생중계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철수
네. 매우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스터송
무슨 말씀이신지? 매우 좋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박철수
아,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제 말씀은 그냥

미스터송
자 선수를 소개합니다. 우선 보시기에 좌측이 정과장! 우측이 김대리입니다. 먼저 정과장 탐색전을 시작합니다.

정과장
(가볍게 한대 갈기며) 이태백!

미스터송
예. 이십대 태반이 백수. 그렇습니다. 현대 사회는 이십대 태반이 백수입니다. 확실하게 탐색전에서 기선을 제압하고 가겠다 이런 전략으로 보이는 군요. 이제 김대리가 뭐라고 말을 할 것 같습니다.

김대리
(마찬가지로 받아 치며) 부장님이

박철수
네. 부장님 카드를 들고 나오는군요. 그렇죠. 확실한 우리 사회의 출세길. 부장. 네. 멋있게 받아 쳤습니다. 역시 김대리 답습니다.

미스터송
그렇군요. 박철수씨도 역시 줄을 좋아하시는군요. 아, 말씀 드리는 순간 정과장 본격적인 스트레이트를 날립니다.

정과장
리턴, 피드백, 월급, 수익

미스터송
그렇죠. 월급에 대한 리턴 내지는 피드백이 되어야 한다. 즉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 이런 말입니다. 다시 김대리는 (쳐다보고)

박철수
네. 그렇죠. 할 말이 없을 겁니다. 가만히 있어야 본전이라도 찾죠. 정과장의 한 마디 정말 비수와 같습니다.

미스터송
아, 말씀 드리는 순간, 정과장 다시 한마디 합니다.

정과장
경쟁, 월급, 이익, 자본주의

미스터송
그렇습니다. 자본주의의 생리는 경쟁을 통한 이익의 창출이라는 말이겠죠. 네. 정과장 대단합니다. 김대리가 뭐라고 말 할 기회도 주지 않고 쏟아 붇는군요. 그렇습니다. 현재 정과장이 3대 0으로 김대리를 압도하고 있습니다.

박철수
그렇습니다. 아마도 퍼펙트 게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대리는 다시 (쳐다보고) 그렇습니다. 역시 할 말이 없습니다.

미스터송

자 이제 마지막 정과장의 최후의 공격으로 보입니다.

정과장
최고, 최고, 최고 (김대리 K.O)

미스터송
대단합니다. 완전히 상대를 제압하고 넉다운 시키는 최후의 기가 막힌 공격, 최고, 최고, 최고.

정과장
시끄러워.

정과장
김대리.

김대리
예 과장님.

정과장
일이 도무지 안되지?

김대리
죄송합니다.
정과장 그렇게 해서 자리 온전하게 보존하겠어?

김대리
예?

정과장
옷 벗어야지?

김대리
예?

정과장
왜 내가 뭐 잘못 얘기했나? 옷 벗어야지. 그렇게 트렌드 분석 하나 못하는 직원을 왜 우리 회사에서 월급주어 먹여 살리나 말이야? 응?

김대리
아니, 저 과장님. 제가 사실 어제 저녁에 하려고 했는데요. 그때 부장님과 술 자리도 있고 해서..

정과장
그래? 그럼 옷 벗고 나가서 부장님과 밤마다 술 마셔.

김대리
죄송합니다.

정과장
이거 어째 남 탓이나 하고 있네?

김대리
죄송합니다. 과장님. 하지만 저도 능력 있고 충분히 잘 할 수 있습니다. 과장님 저 잘 아시지 않습니까? 저 김봉남입니다. 제가 잠시 슬럼프라서 그렇지 이대리 디자인한 정도의 옷은 순식간에 수없이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저를 믿어 주십시오.

정과장
자넬 믿으라고? 어떻게? 자네 슬럼프라는 것이 벌써 언제부터야? 그러다가 이대리가 먼저 승진하면 참 좋겠다.

김대리
무슨 섭섭한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당연히 제가 승진해야죠.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어제는 시간이 없어서 충분히 준비를 하지 못했습니다. 저에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저를 믿고 저의 능력을 믿고 조금만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십시오.. 과장님께서 원하시는 과장님 입맛에 딱 맞는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하겠습니다.

정과장
김대리 김대리 김대리 김대리 김대리 김대리 김대리 김대리 김대리 김대리! 이것봐 이것봐 이것봐 이것봐! 아직도 이해를 못하고 있잖아!

정과장
알았어? 자네와 같이 그런 구세대적인 생각으로 21세기를 살려고 한다면 아마도 곧바로 파멸의 길로 떨어질 거야. 당장 나가! 나가서 트렌드 확인하고 분석해서 내년 브랜드 컨셉까지 모두 체크해서 내일까지 보고해! (이대리 보고 웃으며) 이대리도 나가서 조금 도와줘. (다시 김대리에게) 아니면 내일 당장 옷 벗어!!!!

김대리
오늘 아주 망했네. 왜 하필 부장님하고 사장님은 오늘 오셔서 이렇게 사람을 초라하게 만드냐고?

이대리
됐어. 드디어 승진은 내 차례야. 이제야 말로 나의 실력을 보여 주는 거야. 파이팅이다.

#3 길

김대리
이거 막상 나오기는 했는데 …

박철수
어느 쪽으로 가 볼까요?

김대리
어느 쪽? 글쎄. 뭐 우리나라 사람들 옷 입는 스타일이 뻔하니까 나가봐야 별 보탬도 되지 않을 텐데. 어디 명동? 강남? 하긴 나가봐야 내가 벌써 몇 년 전에 디자인으로 뽑았던 것들 울궈먹는 상황인데, 뭐 별 보탬이 되겠냐?

유지수
그렇지만 그때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잖아요. 경제 상황도 다르고 사람들의 생각도 많이 달라졌는데.

김대리
다르면 뭐가 얼마나 다르겠어? 달라지면 한국사람이 아니고 어디 중국사람이라도 된대? 그래 봤자 한국사람이지. 한국사람은 뻔해. 딱 스타일이 나와 있잖아. 아줌마 아저씨 직장인 청소년. 어쨌든 그렇게 진지하게 살펴보고 고민하지 않아도 정답은 항상 동일해.

박철수
그런 부분도 있지만 지금은 워낙에 모든 것들이 빠르게 변화되는 시대라서 우리의 취향이 사람들에게 제대로 먹힐지 걱정이네요. 사회적인 분위기도 지금은 좀 침울한 것 같고, 더구나 날씨도 엄청나게 바뀌었잖아요. 이런 부분들이 다 디자인에 영향을 끼쳐야 한다고 봅니다.

김대리
철수, 너 지금 나 가르치냐?

유지수
그렇지만 대리님. 그런 건 디자인에서 너무도 기본적으로 먼저 생각해야 하는 요소 아닌가요?

김대리
야, 그거 누가 몰라? 너희들 정말, 내가 요즘 슬럼프라고 너희까지 날 무시하냐?

수.지
죄송합니다.

김대리
나 김봉남이야 김봉남. 앙드레 김 선생님 이름 가지고 있는 김봉남.

유지수
저, 선배님.

김대리
너희들 그렇게 까불다 혼난다. .

박철수
죄송합니다.

김대리
일단 나왔으니까 한 바퀴 죽 돌아보자.

수지
예, 선배님.

김대리
왜? 왜 내가 공격의 대상이 되어야 해? 나 능력 있어. 나 잘할 수 있어. 내가 가지고 있는 안목과 나의 능력이 합쳐지면 무적이 되는 거야. 지금은 잠시 슬럼프일 뿐이야. 이 슬럼프를 벗어나는 날 나는 다시 최강자가 될 거야. 이제 이것만 극복하면 돼. 멀지 않았어. 나도 오기 있고 능력 있어. 나도 얼마든지 잘할 수 있어. 내 주변에서 나를 비웃는 나의 선후배 동료들. 너희들 모두 얼마나 빈약한 능력들로 나를 비웃었는지 알게 해 줄 거야. 나 김봉남이야. 앙드레 김 선생님의 이름을 딴 김봉남.

이대리
그렇지. 이렇게 나가는 거지. 이 사회에서는 누가 먼저 왔느냐가 중요하지 않아. 누가 능력이 있느냐가 중요하지. 능력 있는 사람이 앞서는 것이고 승진하는 거지. 내가 앞설 거야. 저 김대리, 디자인 좀 했다고 으스대기만 하고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김대리. 누구나 그만큼의 능력은 있어. 누구나 그만큼은 할 수 있어. 거만하게 눈 내리 깔고 사람이나 우습게 아는 김대리. 곧 너는 내 발 밑에 기게 될 것이다. 기다려라.

#4 내일을 향해

김대리
자! 출세를 위하여!

이대리
파이팅!

김대리
그런데 말이야. 우리 정과장은 왜 나를 인정하지 않느냐고? 아니 그깟 피티 좀 제대로 못할 수도 있는 것 아니야? 내가 누군데. 내가 가진 능력이 얼만데. 나 김봉남이야. 앙드레 김 선생님 이름을 딴 김봉남이라고

A
그건 아니라고 본다. 트렌드 분석은 우리 회사의 생명인데 그걸 제대로 못하면 곤란하지.

B
사실 너 여태까지 뭐 시킨 것 제대로 한 적 있냐?

C
그렇지. 한 번도 제대로 해서 보고한 적이 없잖아.

D
난 아니야.

E
난 언제나 철저하게 마쳤다고.

이대리
맞아. 분명하게 확실하게 일을 마무리 지어야 해.

F
그 친구가 오늘 심하긴 좀 심했지.

G
야, 사실 쌤통 아니냐?

H
그래. 맞아. 쌤통!

I
그 친구 정신 안 차리면 아마 이대리가 먼저 승진할 걸.

J
이대리. 아니 이과장님.

K
정신 차려. 똑바로 해야지.

김대리
왜 나만 보면 그러느냐고? 왜 나만?

이대리
아깝다. 아까워.

김대리
어이, 정과장님. 이리로 오세요.

정과장
예! 이사님

김대리
그래 요즘 어떠세요? 고생이 많죠?

정과장
예!. 아닙니다. 이사님께서 잘 보살펴 주신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김대리
그래 내년 트렌드에 대한 분석은 끝이 났습니까?

정과장
예!, 대략적으로 끝이 났고 이제 본격적인 시장조사에 돌입할 예정입니다.

김대리
그래요? 그럼 시장 전망은 어떻습니까?

정과장
예!, 현재 30년 만에 닥친 최악의 불경기라 전망이 그리 밝은 편은 아니라 보입니다.

김대리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정과장
예!, 전체적으로 볼 때 이런 상황에서는 다소간 투자의 폭을 줄이고 시장의 경기가 다시 살아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라 보입니다.

김대리
투자를 줄이고 기다리자?

정과장
예!.

김대리
그보다는 R&D쪽으로 더욱 투자의 폭을 넓혀야 하는 것 아닐까요?

정과장
예!. 아닙니다. 섣부르게 투자를 늘렸다가는 화를 당하기 쉽습니다.

김대리
화를 당하기 쉽다? 글쎄 내가 보기에는 보다 철저하게 준비해서 보다 효과적으로 투자를 늘리는 것이 불경기에 오히려 사세를 확장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보이는데.

정과장
예!.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기업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렇게 행동으로 나서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김대리
그럼 망해야겠군?

정과장
예!. 예?

김대리
전망이 밝지 않으니까 투자를 줄이고 기다리자면서요? 그렇다면 뭐 새로운 것 만들어서 도전하는 것 보다는 그냥 있는 것 가지고 조용히 앉아서 망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좋겠다는 말 아닙니까?

정과장
예!. 아닙니다. 제 말씀은 나중에 보다 확실한 투자를 위해서 당분간 긴축운영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김대리
그 얘기가 그 얘기 아닌가 말입니다? 어려울 때니까 투자를 하지 말자는 얘기 아닌가 말입니다?

정과장
예!. 뭐 꼭 그런 말씀은 아니고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도 있겠다 이런 말씀입니다.

김대리
그러니까 뭐가 어떻다는 얘기야? 당신 도대체 과장 몇 년째 하고 있는 거야? 그렇게 사람이 발전적이지 못하고 도전적이지 못하고 시장에 끌려 다니니까 여태 만년 과장 노릇하고 있는 것 아니야? 아니 내 말이 틀려? 이거 누구 보고야?

정과장
예!? 예. 저 이대리의 보곱니다.

김대리
이대리? 아니 개 아직 안 짤렸어? 아직도 이 회사에서 월급 받고 있단 말이야? 당장 이대리 불러.

정과장
예!. 이대리. (춤추고 놀고 있는 이대리를 데리고 온다.)

이대리
(멋도 모르고 끌려와서) 부르셨습니까?

김대리
그래 불렀어. 긴축운영을 하자 이건 자네 의견인가?

이대리
예!.

김대리
그래서 일이 제대로 되겠어? 사람이 말이야. 뭔가 어려움이 있으면 돌파하고 나갈 패기를 가져야 할 것 아닌가?

이대리
아니 제 말씀은 그러니까..

김대리
알아 알아. 알아 알아. 자네가 무슨 말할지 알아. 아무리 여자라지만 그렇게 용기가 없어서 그거 어디에 써 먹겠냐고? 응?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까 말인데, 당신들 실패하는 기업의 대부분 공통점이 뭔지 알고 있나?

정과장
예!. 아니요. 글쎄요.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김대리
너는 왜 대답이 없어?

이대리
죄송합니다. 생각해 보지 않았…

김대리
그러니까 투자를 줄이자는 말이나 하지. 실패하는 기업은 대부분 불경기에 투자를 줄여. 그래서 그때까지 확보해 놓은 시장을 상실하고 망하는 길로 나선다는 거야. 이런 단순하고 상식적인 얘기를 왜 그렇게 이해하지 못하는가 말이야.

정과장
예!. 이사님 말씀 잘 알아듣겠습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던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서 이사님께서 원하시는 보고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김대리
이봐. 이봐. 이봐. 이봐. 아직도 이해를 못하고 있잖아.

정과장
예!, 아니요. 예!. 아니요. 알겠습니다. 다시 한번 연구하겠습니다.

김대리
이 일에 당신들 자리가 달려 있어요. 분명히 말하지만 이번이 마지막이에요. 아니면 옷 벗으세요. 능력이 없으면 끝나는 거에요.

정과장,
이대리 (어깨를 늘어뜨리고) 예.

박철수
오늘 끝까지 가는 거야. 끝까지. 야, 마이크! 달려라!

정과장
회의!!

#5 우리는?

박철수
김대리님. 오늘 뭔가 건지긴 건지셨어요? 이제 뭔가 해야 할 것 같은데. 대리님이 잘 돼야 저도 잘되는 거니까. 후배들에게 밀리지 마시고 얼른 승진해서 저도 좀 키워 주십시오.

이대리
뭘 그까짓 것 가지고. 잘 봐둬. 내가 꼭 승진할 테니까.

김대리
그렇지. 당연한 얘기지. 나 말고 누가 승진할 거야?\

최순희
그래도 김대리님도 능력 대단하잖아. 지금 일시적으로 슬럼프라서 헤매고 있지만.

박철수
가끔씩이란 의미가 없는 말이죠. 언제나 분명하게 뭔가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하니까요.

유지수
나도 얼른 자리 잡아 인턴 딱지 떼야 할 텐데.

미스터송
맞아 가끔씩 없는 사람 있어? 누구나 다 가끔씩은 있는 거야.

이대리
그래. 맞다. 언제나 능력!

김대리
역시 능력이 중요해. 오늘 내가 약간 실수를 해서 그렇지. 큰 문제 아니야. 나 알지? 나, 김봉남. 앙드레 김 선생님 이름 딴 김봉남.\

미스터송
맞아요. 능력이 우선이죠.

박철수
대리님, 사랑합니다.

유지수
슬럼프도 끝이 있는 거니까. 곧 벗어날 수 있으시겠죠.

모두
자! 가자!

김대리
아니, 이거 누구야?

이대리
어머 여기 웬일들이세요?

김대리
우리 한잔하고 가는 중이지.

박철수
우리 사무실 능력파 여성들 다 모였습니다.

미스터송
썽 블라그.

김대리
뭐라고?

최순희
아니에요. 아무 것도. 그냥 농담한다는 얘기예요.

김대리
나도 알거든요. 나도 불어 좀 하거든요.

박철수
그럼 우리 다 모였으니까 과장님도 오시라고 할까요?\

유지수
그게 좋겠네요. 과장님만 계시면 우리 디자인실 핵심 멤버는 모두 있는 거니까.

이대리
그러죠. 과장님 오시면 반가워하시겠네요.

김대리
과장 얘기 하지마.

최순희
어머 왜 그러세요. 그래도 그런 분 별로 없어요.

김대리
별로 없긴 뭐가 별로 없어요? 나만 못 잡아 먹어서 매일 안달인데요.

미스터송
노노노노노노. 그건 그렇게 얘기할 수 없는 거죠.

김대리
아니 내가 뭐 틀린 말했어? 오늘만해도 그렇잖아. 뭐 피티 좀 더듬을 수도 있는 거고.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응, 부장님하고 술 한잔하다가 준비 좀 못했기로서니 뭐 그런 단순한 일로 사람 기를 그렇게 죽이느냐고?

미스터송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되죠. 사실 뭐 과장님이 그렇게 틀린 말한 것도 아니잖아요.김대리 틀린 말도 아니라고?\

유지수
참으세요.

미스터송
그렇잖아요. 사실 김대리님이 제대로 일을 못해서 그렇게 된 거지 어디 과장님이 김대리님과 개인적인 뭐가 있어서 그렇게 했겠어요?

김대리
오라라라라라라. 그런 소리 마세요. 나 김봉남이에요. 앙드레김 선생님 이름을 딴 김봉남. 나 능력 있어요. 우리 정과장님은 뭘 잘 모르는 분이세요.

최순희
아니죠. 과장님을 그렇게 쉽게 매도하지 마세요.

박철수
뭐, 매도? 야, 최순희씨 많이 컸네. 선배한테 그런 말을 다 하고.

이대리
철수씨, 그렇게 선배 강조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니에요. 사회는 능력이 우선이니까? 과장님이 나를 승진 대상자로 지목한 것도 내가 가진 능력을 올바르게 평가해서 그런 거 아니냐고요. 사실 며칠 동안 밤새면서 나만큼 피티 준비한 사람 어디 있어요?

최순희
이대리님. 지금 뭐라고 했어요? 그럼 혼자 다 했단 말인가요?

이대리
누가 혼자 다 했다고 했어? 그냥 내가 며칠 밤새면서 고생했다 이거지.

박철수
그러지 말고, 그냥 혼자 다 했다고 하세요. 그 말이 그 말인 것 같은데…

이대리
따지고 보면 내가 뭐 잘못 말 한 것도 아니잖아. 사실이 그렇잖아.

최순희
야, 이거 가만히 듣자니 열 받는데. 아니. 그럼 지금까지 대리님 밤새면서 준비할 수 있도록 자료 찾아주고 함께 토론해 준건 누굽니까? 우리 팀의 팀장이라고 대리님이 원하는 자료 시장 나가 가져오고 인터넷 뒤져 찾아오고 하다 못해 복사해 달라면 그것까지 해줬잖아요. 그런데 이제 와서 그렇게 말할 수 있어요?

이대리
왜 이렇게 흥분하고 그래? 그럼 그런 단순한 일 좀 도와줄 수도 있는 거지. 트랜드 분석이며 피티에서 발표할 내용들 뭐 이런 핵심적인 것들은 다 내가 한 거잖아. 그런 단순한 일로 무슨 생색을 그렇게 내려고 해.

최순희
뭐라고요? 단순한 일이요? 아니 그럼 내가 하녑니까? 중요한 일은 혼자 다하고, 나는 그저 뒤치다꺼리나 하는 하류인생입니까? 더군다나 내가 옛날 장기 살려서 대리님 말하는 거며 자세 제스처 발표할 때의 억양, 뭐 이런 것까지 모두 정리해줬잖아요.

이대리
가만 있어봐. 그럼 나는 로봇이라는 거야? 네가 시키는 대로만 했다는 거야? 내가 그래도 능력이 있으니까 그만큼 한 거 아니야.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했으면 제대로 따라 하기나 했겠어?

최순희
야, 정말 돌아 버리겠네. 대리님 말할 때 ‘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거 ‘했습니다’ 이렇게 고쳐준 게 누굽니까? 하다 못해 다이어트까지 함께 찾아서 다녀주고 하여간 자료 준비할 때 항상 옆에 있던 게 누구냐고요?

박철수
야, 잘한다. 최대리님 멋져요.

이대리
그래. 네가 다 했다. 네가 능력자다. 나는 로봇이고 네가 시키는 대로 다 했다.

최순희
그렇게 빈정거리지 말고 똑바로 말하세요. (혼자 말로) 촌스러운 년 데려다 때 빼고 광내 줬더니 이제 네가 내 뒤통수를 쳐?

김대리
그래. 그래 계속해.

이대리
뭐 촌스럽다고? 너 촌스러운 건 생각 안 하니? 사실 말이 나왔으니까 말인데 네가 옛날에 무슨 웅변학원에서 강사를 했는지 뭘 했는지 몰라도 네가 옷 입는 거며 트랜드 분석할 때 방향 잡는 거, 이런 거 정말 유치하게 촌스러워.

김대리
오케이, 오케이, 계속해. 계속해. 그냥 밀고 나가.

이대리
(김대리에게) 지금 불 난 집에 부채질 하는 겁니까?

김대리
어? 왜 화살이 나한테로 와? 여기가 아니야. 저기라고.

유지수
그만 하세요.

박철수
그래. 저쪽이에요. 빨리 계속 쏘세요.

최순희
그만해요.

박철수
왜? 일단 시작했으면 끝까지 가야죠.

미스터송
이제 그만하세요. 같은 회사 사람들끼리 왜 이러세요? 수준 차이 나게.

김대리
가만 있어봐. 이거 말이 이상하네. 아니 우리가 언제 싸움시켰어? 먼저 시작한 싸움 계속하라고 하는데 뭐가 잘못이야?

박철수
그렇지. 계속하라고.

미스터송
(소리 지른다) 야!! (모두가 미스터송을 쳐다 보고, 미스터송은 다시 조용하게) 어머. 미안합니다.

박철수
깜짝 놀랐잖아. 야, 미스터송 뭔가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데.

미스터송
우리 이제 그만하고 과장님도 불러서 모두 같이 단합이나 다지죠.

유지수
좋아요. 제가 전화 드릴까요?

박철수
과장님? 그래. 그것도 괜찮겠다.

김대리
안돼! 왜 갑자기 과장 얘기로 넘어가?

미스터송
과장님께 제가 전화할게요.

김대리
시끄러.

미스터송
따걸!

김대리
헛소리 하지마. 그래 내가 뭘 잘못했어? 그리고 지금 얘기하는 거 보라고. 이렇게 후배가 선배한테 말 막 해도 되느냐고?

최순희
언제 우리가 말을 막 했다고 그러세요? 말을 먼저 막 한 건 김대리님이잖아요.

박철수
그래요 그 말도 맞아요. 사실 말을 막한 건 김대리님이죠.

유지수
박대리님, 왜 그래요?

김대리
아니 철수, 왜 그래?

박철수
예? 아니. 저는 그냥 말을 막 한다니까…

김대리
이것 봐라. 그래 내가 다 잘못했다? 너희들은 잘 나고 나만 못났다?

이대리
언제 우리가 잘났다고 했습니까? 정말 많이 취하셨군요.

김대리
취하긴 뭐가 취해. 뭐 피티 한번 제대로 하고 과장한테 잘 보였다고 세상이 다 네 것이라도 된 줄 아냐?

미스터송
일에 푸 우 꽈?

김대리
시끄러.

이대리
아니 취했다고 그렇게 말 함부로 하지 마세요.

김대리
뭐라고? 말 함부로 한다고. 그래 야 이 씨팔년아. 말 함부로 했다. 어쩔 거냐?

최순희
(순간 멍해져 옆으로 피하면서) 어머. 이게 무슨 일이다니? 왜 이러니?

김대리
어쩔 거냐고?

최순희
(정신을 차리고) 그래 이 개 같은 자식아. 너만 욕할 줄 아냐?

김대리
그래 좋다. 한 번 해보자 이거지. 나는 매일 개인적인 일로 바빠서 일도 제대로 못하고 너처럼 잘난 인간들보다 피티도 못하고 월급만 축내고 있다. 너희들이 내 월급이라도 주냐? 무슨 사장이라도 되냐?

미스터송
참 여러 찔이네. 아유, 짜증. 빨리 빠리로 떠야지. 아유 수준 차이 나.

박철수
그러지 말고 참으세요. 후배들하고 이게 무슨 일입니까? 창피하게.

유지수
김대리님. 이러시면 안돼요. 나중에 어떻게 얼굴 보려고 이러세요.

김대리
이거 놔. 말리지마. 내 오늘 쟤들 다 죽일 테니까.

최순희
그래. 해보자. 정신 똑바로 차려. 자기 할 일은 제대로 하면서 큰소릴 쳐야지.

김대리
그래 좋다. 오늘 다 같이 죽자.

박철수
아닌데 이러면 안 되는데.

#6 내일

박철수
대리님! 김대리님! (조명 인, 의자에 앉아 졸고 있는 김대리를 박철수가 흔들어 깨우고 있다.) 정신 차리세요!

김대리
(깨어나며) 응? 응?

박철수
아니 무슨 잠꼬대를 그렇게 요란하게 하면서 주무십니까? 사무실에서….

김대리
응? 잠꼬대? (후다닥 일어나며) 우리 아무 일도 없었지?

박철수
무슨 일이요?

김대리
아니 저기 이대리 쪽 친구들하고?

유지수
아니요. 아무 일도 없었는데요.

김대리
아휴 정말 다행이다. 생각만해도 끔찍하네.

유지수
왜 무슨 꿈을 꾸셨는데요? 이대리님이 출연이라도 했어요? 무슨 꿈인데요?

김대리
응 아니 아니 별일 아니야. 아무 일도 아니야.

박철수
요즘 이대리님이 무섭긴 무서운가 보죠? 꿈에 다 나타나는 걸 보니. 하긴 요즘 우리 디자인실의 대세죠.

김대리
대세는 무슨!

박철수
죄송합니다.

유지수
에이 김대리님, 솔직히 이대리님 능력 있잖아요.

김대리
능력? 내가 제대로 하면 쟤 지금 하는 것 10분이면 다 끝낼 일들이야.\

박철수
오늘 피티 보셨잖아요. 얼마나 깔끔하게 잘 했습니까? 반면 김 대리님은, 솔직히, 아니었죠.

김대리
야 박철수! 그래 내가 아니었던 것, 인정한다. 그런데 뭐 이대리가 깔끔하다고? 그거 무슨 뜻이냐?

박철수
죄송합니다.

김대리
너 그런 안목으로 어떻게 디자인할래? 디자인은 사람들의 이성과 감성, 문화적인 성향, 당 시대의 인간적 고뇌와 인간의 심리를 파악하고 역사적인 상황과 경제적인 분위기 까지를 파악해야 제대로 된 트랜드를 제시할 수 있는 거야. 그렇다면 이대리가 어떤 접근방법을 이용해서 추출해 낸 어떤 근거로 피트앤플래어를 제시했냐?

박철수
죄송합니다.

김대리
그렇게 일반적으로 들리는 이야기들 정리해 발표했는데 어떻게 능력이 있다고 인정할 수 있냐고?

박철수
죄송합니다.

유지수
그럼 김대리님이 보시기에 앞으로의 트랜드는 어떤 건가요?

김대리
나? 모르겠다.

유지수
예?

김대리
모르겠다고. 그게 지금 나의 고민이라고.

유지수
김대리님.

김대리
전에는 그게 잘 보였는데 갑자기 잘 안 보인다고.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고. 정말 죽겠다고.

유지수
에이, 대리님.

김대리
어쨌든 너희들, 내가 피티 한 번 망친 걸 가지고 나를 우습게 보는 거냐?\

박철수
아닙니다.\

김대리
까불지 마라. 내가 한 두 번 실수한 것 가지고 너희들이 뭔가를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박철수
아닙니다. 그런데 사실, 대리님은, 한 두 번이 아니고 벌써 이게 여러 번째입니다.\

김대리
박철수!

박철수
죄송합니다.

유지수
저 선배님.

박철수
그렇지만 말 나온 김에 조금 더 얘기하자면, 사실 얼마 전부터 우리 디자인실에서 김대리님 존재감 확 상실되고 지금은 거의 이대리님 쪽으로 기울어 있습니다.

김대리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

박철수
죄송합니다.

유지수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아닙니다. 솔직히 요즘 김대리님, 정말 별로입니다.

김대리
이거 정말 왜 이래? 너희들 둘 다 미친 것 아니야?

지.수
죄송합니다.

김대리
이봐 박철수, 부장님 보필하랴, 정과장 눈치 보랴 치고 올라오는 후배에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잖아. 잘 알면서 왜 너까지 한몫 거드는데?

박철수
대리님 일이 부장님 보필하고 과장 눈치 보느라 치고 올라오는 후배에게 깨지는 건가요?

김대리
야! 너 지금 말 다했어?

박철수
죄송합니다.

유지수
그건 대리님 일이 아니죠. 대리님 일은 디자인이죠.

김대리
그만해라!

부장
그만하긴 뭘 그만해?

김대리 아니 부장님.

부장
매일 아침 술 냄새 풍기며 출근해서 하루 종일 하품하며 졸고 있고 회의시간에 다른 생각하고 수시로 사우나에 들락거리고 하라는 일 제 시간에 끝내지 않고 꺼덕하면 자리 비우고. 이게 최근 네 모습 아니냐? 김봉남?

김대리
저, 부장님.

부장
게다가, 쟤가 한 거 난 5분이면 50개는 디자인 한다, 내가 하면 저 디자인 10분이면 끝낼 일이야, 한국 사람은 다 뻔해. 정답은 항상 동일해, 연구해봤자 별 보탬도 되지 않아. 이게 최근 네 어록 아니냐?

김대리
저, 부장님.

부장
그럼 뭐 하러 일하냐? 다 뻔한 데 왜 머리 아프게 일해?

김대리
죄송합니다.

부장
항상 뻔하고 연구해봤자 별 보탬도 되지 않는다며?

김대리
제 말씀은 그게 아니라…

부장
세상이 그냥 멈추어 있냐? 끊임 없이 변화하고 움직이는 것 아니야? 원리라는 기본만 제 자리에 있는 것이고. 그런데 너는 그 원리에 대한 약간의 지식을 가지고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모든 걸 무시하고 우습게 알고 있어.

김대리
죄송합니다.

부장
그럼 뭐 하러 출근하고 뭐 하러 일하느냐고? 아무 것도 할 필요 없잖아. 월급 받으러 출근하냐? 승진하고 싶어서 출근하냐?

김대리
부장님.

부장
뭔가 목적이 있을 것 아니야? 네가 출근하는 목적이 뭐냐?

김대리
죄송합니다. 부장님.

부장
죄송하다는 말만 하지 말고 네가 무엇 때문에 출근하고 무엇 때문에 일하는지 그 목적을 말하란 말이야.

김대리
목적이요?

부장
그래. 목적! 네 인생의 목적!

김대리
생각해 보겠습니다.

부장
내 이럴 줄 알았지. 목적도 없이 살아가고 있으니 뭐가 제대로 될 리가 있나? 잘 생각해 보고 내일까지 네가 왜 출근하고 왜 일하는지 그 목적을 정리해서 나에게 가져와.

김대리
알겠습니다.

부장
(돌아서다가) 잠깐, 한 번 웃어봐.

김대리
예?

부장
웃어보라고. 활짝.

김대리
(억지로 웃는다.)

부장
그게 웃는 얼굴이야?

김대리
(더욱…)

부장
그 얼굴 가지고 뭐 하겠어?

김대리
죄송합니다.

부장
그렇게 불만이 많아?

김대리
아닙니다.

부장
그렇게 짜증이 나면 그냥 집에서 쉬어.

김대리
아닙니다. 부장님.

부장
얼굴이 그렇게 불만족스러운데 그 얼굴에서 어떻게 만족스러운 작품이 나오겠나?

김대리
예?

부장
네가 짜증내면서 일하면 네 일도 짜증으로 만들어질 것이고, 웃으면서 일하면 네 일도 당연히 웃음으로 만들어질 거 아니야?

김대리
죄송합니다.

부장
잠깐, 너 혹시 나하고 술 좀 마시러 다닌다고 그렇게 생활하는 것이 용서되리라고 생각하냐?

김대리
아닙니다.

부장
자식, 뭘 좀 하는 것 같길래 키워줄라고 했더니 도무지 허당이로구만. 아까만해도. 뭐야? 장난해? 그게 네 능력이야? 내가 기댈한다고 잘해보라고 얼마나 얘기했어? 그런데 네가 나에게 보여줄 것이 고작 그것 밖에 없단 말이냐?

김대리
죄송합니다.

부장
누군가 너를 믿으면 믿는 사람 배신은 하지 말아야지.

김대리
죄송합니다.

부장
너 잘려서 집에 가서 쉴래?

김대리
네?

부장
그래. 내가 보기에 넌 삶의 목적도 없고 얼굴엔 불만만 가득하고 애초에 싹이 노랗다. 집에 가서 쉬어라.

김대리
부장님.

부장
그럼 이익 창출 못하고 월급이나 축내는 직원은 자르는 게 기업 아니냐?

김대리
죄송합니다. 부장님.

부장
그래. 그렇게 하자. 너 당장 사표 써. 너처럼 자신과의 싸움에서 패배하는 놈은 더 이상 월급 주고 키울 생각 없어. 너 내가 젊었을 때 어땠는지 아냐? 난 부장님하고 밤새 술 마셔도 아침 일찍 출근해서 자리 한 번 비우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일했어. 그 덕분에 지금 부장이라도 하는 것이고. 그런데 너는 그 술 몇 잔 마셨다고 그렇게 생활이 흩어지면 앞으로 네가 뭘 할 수 있겠어? 인생이 그렇게 우스워 보이냐? 아무리 봐도 너는 백수나 되는 게 제일 좋겠다. (퇴장.)

김대리
부장님.

김대리
(펄쩍 뛰어 일어나며) 안돼!

박철수
선배님. 죄송합니다. 저희들이 너무 건방을 떨어서.

김대리
응? 그래 그래. 일단 우리 생각 좀 해 보자고.

유지수
선배님. 저 제가 주제 넘지만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김대리
알았으니까 이제 좀 그만 하자.

유지수
아닙니다. 꼭 드려야 하는 얘깁니다.

김대리
그만 하자고 좀.

유지수
사실 전부터 얘길 드리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어서. 대리님. 잘 아시다시피 개인적으로 저는 대리님 대학 후배입니다. 저는 정말 이 회사에 들어올 때 기뻤습니다. 선배님이 이 회사에 있었기 때문이죠.

유지수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선배가 이상해졌어요. 뭔가를 하겠다는 의지도 보이지 않았고 사람들을 무시하기만 했고 디자인 할 때도 즐거워 보이지 않았고 무언가에 항상 쫓기는 것 같았어요.

유지수
죄송해요. 선배님.

박철수
죄송합니다.

김대리
(한 동안 멍하고 서 있다가) 응, 그래. 응.

김대리
이봐. 철수. 우리 다음 시즌 피티 언제 하기로 했더라?

박철수
다음 주 금요일입니다. 그거 끝내고 토요일까지 일박이일 단합대회 가기로 했습니다.

김대리
참, 맞아. 그랬었지. 수.지, 오늘 우리 팀 사전 단합대회 한 번 가질까?

수.지
좋습니다.